한국일보

한인사회 어디로 가나

2011-11-09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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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 주 영(주필)
신문의 오피니언 페이지 담당자에겐 독자투고가 많이 들어온다. 하지만 때때로 글이 아닌 전화로 자신의 어려운 처지를 하소연하거나 다른 사람, 또는 단체가 못 마땅하다며 질타하는 독자들도 있다. 아무래도 글보다는 말로 하는 ‘기고’가 덜 부담스러운 모양이다.

지난주에도 몇몇 독자들로부터 그런 전화를 받았다. 최근 한인사회에 크게 잡음을 일으킨 교회협의회의 회장선거에 관한 얘기가 대부분이었다. 이들은 하나같이 안타까움을 표하며 여러 각도에서 의견을 개진했지만 결론을 요약하면 한인교회, 나아가서 한인단체들의 실상이 이래서는 곤란하다는 얘기였다. 한인사회의 버팀목이요 길라잡이가 돼야할 교회와 단체들이 숫자만 많지 주어진 역할을 제대로 하는 곳은 가뭄에 콩 나듯 하다는 것이다. 실제로 한인사회에는 요즘도 교회가 계속 생겨나고 있다. 사회단체들도 그 숫자를 정확하게 파
악할 수 없을 정도로 핵분열을 일으키고 있다. 하지만 이들 교회와 단체가 그 양과 규모에 상응하는 봉사활동을 하기는커녕 오히려 갈수록 부작용만 양산하고 있어 이들의 존재의의 자체를 의문시하는 한인들이 적지 않다. 한인사회의 규모가 커지면서 부부관계나 자녀교육 등 가정문제로 어려움을 겪는 한인들도 예상외로 많은 것이 현실이다.

이런 문제에 부딪친 이민자들이 가장 먼저 찾는 곳이 교회이다. 누구에게나 문이 열려 있어서 쉽게 찾아가 도움을 호소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난주 전화를 걸어온 한 독자는 어려운 처지의 한인들이 교회를 찾아가도 십중팔구 혼자서 끙끙 앓다 돌아오기 일쑤라고 귀띔했다. 교회가 그런 약자를 보듬어주고, 문제를 해결해주려는 의지나 자세를 보이지 않는 분위기여서 자연히 문제노출을 꺼리게 된다는 것이다. 그는 상당수의 한인교회들이 재력이 있거나 직분이 높은 사람들 위주로 운영되고 있으며 구제나 봉사활동은 뒷전으로 제쳐놓고 세 불리는 데에만 신경을 쓰고 있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특히 요즘 한인사회엔 이민생활에서 겪는 문화충돌의 어려움뿐만 아니라 극심한 불황까지 겹쳐 한치 앞을 내다 볼 수 없는 암울한 처지에 놓인 가정이 숱하다는 말을 흔히 듣는다. 경제문제는 물론 가정문제, 신체 또는 정신 건강문제 등으로 만신창이가 된 한인도 많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이들이 심리적 위안이나 물질적 도움을 얻기 위해 찾아갈만한 곳이 한인사회에 과연 얼마나 있는가? 그 많은 교회(뉴욕, 뉴저지 1천여개)는 뭘 하며, 그 많은 사회단체들(500여개)은 누구를 위해 있는지 모르겠다는 말이 들리는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한인 업소록에 보면 각양각색의 사회단체와 기관들이 등재돼 있지만 막상 문제가 나면 도움을 요청할만한 곳이 마땅치 않다. 주변의 한 은퇴교수는 단체 지도자들 중 상당수가 감투를 위해 단체를 만들었다며, 끼리끼리 먹고 마시고 골프나 치며 정작 봉사활동은 뒷전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특히 일부 단체장들은 감투를 앞세워 한국 정계를 기웃거리고 있으며, 한국에서 정당 실세들이 오면 다투어 공항에 출영나가 굽신굽신하면서 얼굴도장 찍기에 혈안이 된다고 비꼬았
다.그는 한인들이 어려움을 호소할 수 있는 곳은 교회도, 사회단체도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라고 말했다.

만인의 쉼터이며 영혼구원의 방주로서 핍박당하는 사람들에 안식을 줘야할 교회가 오히려 분란을 일으키며 상처만 더해주고, 단체 역시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단체가 회장만 있지 대부분 알맹이가 없어 힘없는 사람이 찾아가 도움을 오청해도 속수무책이라고 개탄했다.하지만 한인사회의 치부가 교회나 사회단체뿐일까? 일반한인들도 예전에는 새치기 정도나 문제됐는데 이제는 한국사회를 방불케 하는 사기사건이 여기저기서 터지고 있다. 한인의사 일가족이 대형 메디케이드 사기사건에 연루됐다. 그런가 하면, 착수금을 챙기고 딴전 피운 변호사도 있었다. 요즘 통째로 표류하고 있는 듯한 느낌을 주는 ‘한인사회 호’를 바로잡아줄 조타수는 없을까? juyoung@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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