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경제 정의(Justice)를 다시 생각한다

2011-11-08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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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찬(부국장 대우/경제팀장)

월가 시위 얘기를 안할 수 없다. 최근에는 본질에 벗어난 느낌이 있지만 이 시위는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진행되어온 일련의 과정과 그 결과들이 마침내 폭발한 것이다. 시위를 바라보는 관점에 따라 여러 가지 의미가 있지만 그 중에는 ‘경제적 정의(Justice)는 무엇인가’라는 근원적인 물음이 있다고 본다.
2008년 당시 서브프라임 사태로 야기된 금융투자기관들의 몰락은 미국 경제의 중추인 중산층에 큰 타격을 줬다. 주택시장의 거품이 꺼지면서 주가와 부동산 가격은 폭락했고, 그 결과 일반 국민들은 모기지 이자내기에도 허덕이게 됐다. 실직자가 크게 늘었고, 소비는 위축됐다.

미국정부는 금융기관 구제를 위해 총 9,000억달러의 구제금융을 지원했다. 국민의 혈세로 민간기업을, 그것도 금융위기의 주범들을 지원한다는 점에서 일부 반론이 있었지만, 이들이 무너지면 사실상 국가 경제 전체가 무너질 수 있다는 위기감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 이른바 ‘대마불사’였다. 하지만 금융위기 이후에도 미국 경제는 쉽게 회복되지 못했다. 심지어 디폴트 위기가 있었고, 더블딥(이중 침체)은 현실화됐다. 실업률은 2008년 이전에 비해 2배가 됐고, 그중에서도 청년실업은 17%를 차지할 정도로 심각해졌다.


이같은 사회적 불만에 불을 붙인 것은 역시 월가의 임금과 퇴직금, 보너스 문제였다. 최근 통계에 따르면 금융업계 직원의 1인당 급여는 오히려 금융위기 전에 비해 늘었고 월가 금융업 전체의 이익도 금융위기 전 수준을 넘어섰다. 바로 이것이 ‘월가를 점령하자(Occupy Wall street)’ 시위의 근원이 됐다. 예전에는 월가의 대형 금융기관에서 막대한 보너스 잔치를 해도 ‘그냥 그런가보다’라고 했던 중산층들과 청년들이 구제금융으로 회생한 금융기관들이 자기들만의 리그에서 막대한 돈잔치를 벌이는 것에 분노를 폭발시킨 것이다.

이번 월가 시위를 계기로 전세계적으로 경제적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는 것 같다. 경제의 영역에 ‘정의’라는 기준이 강조되고 있기 때문이다. 성장과 분배에 공정이나 공익과 같은 경제 정의의 개념이 추가된 것이다. 이같은 논란은 한국 경제에서도 똑같이 적용된다. 그동안 한국 경제는 기업이 수출을 통해 돈을 벌면, 그 대가가 일반 국민에게 돌아간다는 고전적 의미의 성장론에 근거해왔다. 성장을 하다보면 부를 얻은 기업이나 개인들이 재투자를 함으로써 풍요로워진다는 고전적인 경제 성장론이다. 이른바 ‘파이’를 키워야 한다는 주장인데, 일정기간 성장에 도움이 되기는 했지만 결국 지금은 오래된 레코드판을 돌리는 듯한 소리가 나고 있다.

특히 이명박 정부 출범후 수출을 위한 고환율 정책이나 부자 감세 등은 결국 상위 1%를 위한 ‘부의 집중’으로 나타나고 있다. 지난 서울시장 선거의 단초가 된 무상복지 문제에서도 반대론자들은 ‘아직은 때가 아니다’라며 무상복지를 포퓰리즘으로 몰아세웠다. 하지만 세계 경제 7위라는 국가에서 기본적인 복지를 무시한다면 과연 무엇을 위한 경제성장인가라는 자문을 해봐야 한다. 한국의 복지예산은 OECD국가 중 꼴찌라고 한다.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한미 FTA 비준 문제도 그렇다. 한국 경제의 성장을 위해 FTA가 필요하다고 하지만, 과연 그럴까하는 의구심이다. 몇몇 분야의 대기업에게 집중되는 그 이익이 일반 국민의 이익과 일치하는 것인지, 또 그동안 FTA이 없이도 잘 성장해왔는데 반드시 지금 필요한 것인지 등은 여전히 궁금하다. 특히 FTA조항 중 하나인 투자자 국가소송제(ISD)의 경우 국가 주권 침해라는 반대 논리와 해외투자자의 피해를 막기위한 필수 조치일 뿐이라는 찬성 논리가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누구의 말이 옳은지 정확하게 판단하기 어렵지만 이처럼 중차대한 FTA를 충분한 시간을 두고 이익과 피해를 꼼꼼히 따져서 하는 것이 왜 안되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다. 장하준 캠브리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FTA는 이혼할 수 없는 결혼”이라며 신중한 접근방식을 주문하기도 했다.

한국의 경제가 눈앞의 이익에만 급급할 단계를 넘어섰다고 본다. 이익의 극대화가 경제의 기본적인 조건이지만, 다른 사람의 희생을 담보로 하거나 특정 계층의 이익만을 위하는 것은 경제적 정의에 어긋난다. 월가 시위의 의미는 공정과 공평, 정의 등이 앞으로 경제의 기본 담론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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