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시간은 돈? 삶?

2011-11-04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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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병임(논설위원)

지난 10월 29일 가을 단풍을 제대로 감상하기도 전에 ‘거짓말처럼’ 폭설이 내렸다. 이날 베어 마운틴 방향으로 갈 일이 있어서 아침녁에는 단풍이 어느새 이렇게 예쁘게 들었지 하면서 깊어가는 가을 풍경을 보았다. 그런데 오후가 되면서 눈이 올 것이라는 예보는 알고 있었지만 한겨울에나 볼 법한 폭설이 생각 외로 많이 내리는 바람에 집으로 오는 길은 미처 제설작업이 이뤄지지 않은 고속도로를 벌벌 기면서 돌아와야 했다.

142년만에 최대 27인치에 달하는 가을 눈폭탄은 뉴저지와 커네티컷 지역에 대규모 정전 사태를 발생하게 했는데 단풍이 잔뜩 매달린 나무에 폭설이 쌓이면서 그 무게로 나무가 쓰러지고 잇따른 정전을 가져왔다고 한다.뉴저지에 사는 친척언니에게 전기가 나가 세탁소 문을 닫았고 아들은 눈길에 차가 미끄러져 교
통사고가 났다는 전화가 오더니 뉴저지 친구는 집에 불이 나가 찜질방에서 잤는데 겨우 드러누울 정도로 같은 처지의 인파가 몰렸다고 한다.커네티컷 지역의 피해는 특히 커서 아직도 전기가 복구되지 않은 지역이 많아 커피 한 잔을 마
시려면 맥도널드나 던킨 도넛에서 보통 30분에서 한시간을 기다려야 한다고 한다.


뉴욕의 날씨는 다시 가을철로 돌아왔지만 아무런 준비 없이 갑자기 한겨울 한복판에 있다가 나온 기분은 묘하다.그러고 보면 우리 인생에 큰 사건은 늘 예고 없이 닥치는 것이 아닌가 싶다. 3주후면 추수감사절이고 다음달에는 크리스마스가 있는 연말이다. 그러면 한해가 다 간다. 하는 일 없이 어영부영 세월을 보내다가 벌써 이 해를 다 보내게 생겼다. 10월에 쏟아진 폭설은 시간의 중요성과 무서움을 동시에 일깨워주었다.

매 시간을 생의 마지막 5분처럼 보낸 어느 사형수가 생각났다. 사형 집행날, 그 사형수에게 마지막으로 5분의 시간이 주어졌다. 28년을 살아온 그 사형수에게 마지막으로 주어진 최후의 5분은 비록 짧았지만 너무도 소중한 시간이었다.사형수는 5분을 자신을 아는 모든 이에게 작별기도 2분, 오늘까지 살게 해 준 하나님께 감사하고, 곁에 있는 다른 사형수들에게 작별인사 2분, 나머지 1분은 최후의 순간까지 서있게 해준 땅에 감사하기로 마음먹었다.

가족과 친구들을 생각하며 작별인사와 기도를 하고 아, 이제 곧 내 인생도 끝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자 지난 28년이란 세월을 함부로 낭비한 것이 후회가 되었다. 다시 한번 인생을 살 수만 있다면 하고 회한의 눈물을 흘리는 순간, 기적적으로 사형집행 중지 명령이 내려왔다. 구사일생으로 풀려난 그는 나머지 생을 매순간 마지막 5분을 생각하며 열심히 살았다. 그 결과 ‘죄와 벌’,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등 숱한 걸작을 발표하며 위대한 작가로 이름을 날렸다. 그 사형수가 바로 도스토예프스키다.

사회주의 모임의 일원이 되었다는 이유로 체포되어 총살형을 선고받고 1849년 12월22일 세메놉스트 광장에서 사형직전 ‘멈추어라’며 장교가 전달한 러시아 황제의 판결취소문 한 장으로 살아난 그다. 우리들은 공짜로 주어진 시간이라고 귀한 줄 모르고 낭비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흔히 ‘시간은 돈이다’ 라고 한다. 돈은 있고도 없고 없다가도 생길 수 있지만 한번 흘러가 버린 시간은 다시는 주워담을 수가 없다. 아무리 천금을 주어도 살 수가 없다. 그래서 ‘시간은 삶, 생명이다(Time is Life)’라고도 말한다.

무도 자기에게 주어진 시간이 얼마나 남았는 지 알 수 없다. 자신의 평소 시간 개념을 살펴보자. 직장이나 집에서나 자투리 시간을 야금야금 버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너무 바쁘거나 너무 심심하다면 그것은 그만큼 효율적인 시간 관리가 되지 않은 것이다. 어떤가, 연말이 다가오니 시간이 달려가는 것이 보이지 않는가? 내 생애 마지막 5분을 생각하며, 우리도 그렇게 살아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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