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교협 어드벤처’

2011-11-02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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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영(주필)
사회나 조직은 그 규모가 크든, 작든 앞장서서 아우르고 이끌어가는 지도자가 있기 마련이다. 좋은 지도자인지 아닌지는 리더십에서 판가름 난다. 훌륭한 지도자는 가치관, 목적의식과 윤리의식, 실력과 전문성을 갖춰야 하며 구성원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파악해야 한다. 이런 지도자는 남들에겐 없는 여러 개의 눈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 적군과 싸우는 지도자는 적진의 울타리 속을 꿰뚫어 보는 ‘천리안’이 있어야 하고, 적장의 마음을 읽을 수 있는 ‘심리안’이 있어야 하며 동시에 나의 능력을 진단할 수 있는 ‘영안’이 필요하다. 이런 눈들이 없는 리더가 대중을 이끌다가 위기를 만나면 그 조직은 리더와 함께 와해되고 붕괴될 수밖에 없다.

지난주 한국의 서울시장 보궐선거 결과는 크게 놀랄 일이 아니었다. 지금 민의가 무엇을 요구하고 있는 가를 정확하게 파악했던 지도자가 당선되었다. 무소속의 박원순 후보가 당선 직후 역대 어떤 시장의 행보와 다르게 전철을 타고 출근한 것만 봐도 그가 시민의 뜻을 잘 읽을 줄 아는 눈치 있는 지도자, 화합할 줄 아는 지도자로 비쳐진다. 유대 민족의 성군이 된 다윗은 목동이었던 어린 시절부터 위대한 지도자가 될 싹수가 보였다. 그는 양을 잡아먹으려고 사자가 달려들 때 자기 목숨을 걸고 양떼를 지켜내며 선한 목자 상을 보였다. 소년 다윗은 사자보다 더 무서운 거인 적장 골리앗과도 목숨을 걸고 분연히 맞서 끝내
그의 목을 베었고 나라를 위기에서 건져낼 수 있었다.

약 반세기 전에 감명 깊게 본 영화 ‘포세이돈 어드벤처’가 생각난다. 이 영화는 지도자가 되길 원하는 사람들과 이미 지도자의 길로 들어선 사람들 모두에게 꼭 필요한 교훈을 준 영화였다. 어떤 사람이 참 리더인가를 보여주는 압축된 교과서였다. 이 영화는 마치 노아의 거대한 방주(교회를 의미함)처럼 큰 배가 갑자기 밀어닥친 쓰나미에 휩쓸려 뒤집힌 채 배 밑바닥이 하늘을 보며 침몰해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배 안은 모든 것이 거꾸로 돼 있고, 그 속에 탄 수천명의 승객들은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 ‘구원’을 얻기 위해 아우성이다. 이 때 대조적인 타입의 두 지도자, 나이 많은 신부와 개신교의 젊은 목사가 등장한다. 카리스마 넘치는 용모의 노 신부는 “여러분이 축복(구원)을 받으려면 나를 따르시오! 반드시 저 갑판으로 가야만 우리가 살 수 있습니다” 라며 감동적이고 호소력 있는 설교를 했다. 승객들 중 대부분이 ‘아멘’ 하며 그를 추종했다.


반면 젊은 목사는 서투르고 호소력도 없는 설교로 노 신부를 따르는 승객들을 극구 만류한다. 그는 “거긴 아니오! 죽음이 기다리고 있소, 나를 따라오시오!” 하고 외쳤다. 하지만 그를 따르는 사람은 불과 몇 명이 고작이었다. 이들은 말없이 헌신하는 젊은 목사를 따라 죽을 고비를 여러 차례 넘기면서 천신만고 끝에 바로 배 밑창까지 도달했다. 그러나 마지막 관문이 기다리고 있었다. 뜨거운 증기를 쏟아내는 파이프의 밸브를 잠그는 일이었다. 모든 사람의 시선은 약속이나 한 듯 젊은 목사에게 쏠렸다. 목사는 이것이 나에게 마지막
으로 주어진 ‘십자가’ 임을 직감하면서 낭떠러지에 달려있는 뜨거운 밸브에 손을 감았다. 그가 뜨거운 밸브를 손으로 잡으면서 울부짖듯 고함을 치며 하던 기도를 결코 잊을 수가 없다.

“하나님! 당신은 나의 목숨이 그렇게도 필요하십니까…” 목사가 일그러진 얼굴로 뜨거운 밸브에서 손을 떼자 그의 몸은 끓는 기름 웅덩이 속으로 떨어졌다. 조난신호(SOS)를 받고 훨씬 전에 헬리콥터를 타고 현장에 도착한 구조대원들이 이윽고 배 밑창을 용접봉으로 뚫자 거기서 뿜어져 나오는 불똥이 생존자들의 머리위로 떨어지고 있었다.

요즘 뉴욕한인교회협의회가 차마 눈뜨고 볼 수 없는 최악의 분규사태에 휘말려 있다. 입이 아닌 행동으로 솔선수범하는 목회자는 없을까? 진정으로 양떼를 구원하기 위해 십자가를 지겠다며 스스로 희생하려는 목회자는 없을까? ‘교회협의회(교협) 어드벤처’가 보고 싶어진다.
juyoung@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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