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조지 워싱턴 다리

2011-10-31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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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 효 섭 (아동문학가/목사)
지난 주 월요일은 뉴저지 주 포트리와 뉴욕 시의 워싱턴 하이츠(Washington Heights)를 연결하는 조지 워싱턴 다리를 준공한지 80주년이 되는 뜻 깊은 날이었다.

포트 오소리티(Port Authority)의 웹사이트에 의하면 처음 이 다리는 대리석으로 시작하였는데 그 고귀한 아름다움은 지금까지도 여전히 남아있다고 평하였다. 이 다리는 1927년에 착공하여 1931년 10월 24일에 준공식을 올렸다. 설계기사는 오스마 암만(Othmar Ammann)씨 이고 차량 통과 면에서 연간 1억 600만 대라는 세계기록을 견지하고 있다. 1960년에 아래층을 완성하여 2층 교량이다. 조지 워싱턴 대교는 가교(架橋-Suspension bridge)이다. 길이 4,760피드, 높이 600피드인데 쇠줄 4개가 다리를 매달고 있다. 이 쇠줄은 27,000개의 철사를 1야드 부피로 꼰 것으로 전부를 한 줄로 이으면 지구를 네 바퀴 감을 수 있다.

조지 워싱턴 가교는 두 개의 거대한 기동이 있고 이 기둥에 엄청난 중량이 매달려 있는데 80년 전에 이만한 기술이 개발되어 있었다는 것은 참으로 놀랍다. 이 다리는 북부 뉴잉글랜드와 남부 풀로리다 까지를 연결해 주며, 동서로는 미 대륙을 뉴욕에서 LA까지 연결하는 큰 역할을 하고 있다. 강력한 쇠줄들의 결집이 대교(大橋)의 기적을 낳듯이 인간사회도 강한 연결로 꾸려져간다.


한국인의 특색이 무어냐고 물으면 나는 정(情)이라고 대답한다. 정은 유대이다. ‘정 들자 이별’이라는 말은 마음의 유대가 생기자마자 몸이 헤어진다는 뜻이다. 그러나 한 번 맺어진 정은 몸이 떨어져도 쉽게 끊어지지 않는 것이 한국인이다. 정이 유대이기에 정은 단결의 힘이 된다. 그래서 정을 나쁜 무기로 이용하면 지연(地緣) 지방색 등 정치적 무기가 되기도 한다. 한국인의 정을 잘 나타내는 것이 냄비이다. 냄비 음식은 한국 식탁의 특색이다. 양철이 생기면서 냄비가 보급되었지만, 그 전에도 오지그릇이 식탁에서 사랑 받았다. 냄비는 본래 식탁에 하나만 놓고, 온 식구의 숟가락과 젓가락이 드나들게 되어있다.

이런 점에서 냄비 음식은 마음과 마음을 연결시키는 가교의 역할을 해 왔다. 미국에 살면 냄비의 효력은 더 큰 것 같다. 부자나 모녀가 알몸으로 공동 목욕탕에 들어갈 수 있었던 한국에서는 그래도 가족 사이에 구김살 없이 정을 통하는 기회가 있었지만 미국 생활에서는 정의 통로가 매우 좁다. 냄비 음식은 식탁의 예절과는 거리가 멀다. 마음 터놓고 사귀고 거리낌 없이 이야기하고 국물
을 뜨겁게 마시는 것이 냄비의 맛이다. 술꾼들이 혼자서는 마른 안주로 마시지만 여럿이 되면 냄비를 찾는 것도 ‘냄비의 사회학’을 알기 때문이다. 위생관념을 따지는 사이라면 아직 정이 깊지 않다고 볼 수 있다. 정은 체면을 앞지르고 냄비사회는 말라빠진 예의를 넘어선다.

정의 표현은 관심으로 부터 시작된다. 관심이 없으면 잊기도 잘 하고 실수도 하고 일도 성의 있게 못하고 무심한 사람이라는 인상을 남긴다. 실상 여러가지 덕목도 따지고 보면 관심의 문제이다. 효도는 부모에 대한 관심이고, 신앙은 신에 대한 관심이다. 충성이라는 것도 관심의 농도를 말하는 것이고, 사랑은 이웃에 대한 관심이다. 관심이 없으면 들리지 않고, 보이지 않고, 말하지 않고, 느끼지 못해 장애자와 같이 된다. 무관심이 퍼지면 살풍경한 사회가 된다.

남에게 사랑의 관계를 갖고 사는 사람은 결코 늙지 않는다. 그들의 육체는 죽어도 관심은 그의 금자탑이 되어 오래오래 남는다. 사랑이란 결국 관심에서 출발한다. 부모의 관심으로 아이들이 자라고 남편의 관심으로 아내가 행복해진다. 자식의 관심이 효도이며 국민의 관심이 애국이고 신에 대한 사랑의 관심이 믿음이다. 가장 외로운 자는 자신도 이웃에 관심이 없을뿐더러 관심의 세계에서 소외된 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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