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죽는 모양도 사는 모양도 가지가지

2011-10-29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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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윤 태(시인)
오래 살던 짧게 살던 누구나 한번은 꼭 건너가야 할 다리가 있다. 죽음의 다리다. 심장의 박동이 멎고 숨이 끊어지면 그것을 죽었다고 선고한다. 죽은 사람을 보면 죽었다는 사실 그 하나인데 죽는 방법이 사람 사는 모양처럼 천태만별이다. 죽음에는 자살이 있고 타살이 있다. 제일 바람직한 죽음이야 말로 큰 병을 치르다가 가지 않는 자연사이지만 세상이 험악해져서인지 고통을 수반하는 병을 앓다가 죽거나, 병들어 죽을 나이도 아닌데 몹쓸 병에 걸려 병들어
죽는 병사(病死)가 있다. 그런가 하면 재미있게 물놀이를 하다가 뜻하지 않게 물에 빠져죽는 익사도 있다.

늙어서 죽으니 노사, 불에 타서 죽으니 소사, 독극물을 먹고 죽으니 독살, 매 맞아 죽으니 타살, 깔려서 눌려죽으니 압사, 떨어져 죽으니 낙사, 부딪쳐 죽으니 충돌사, 늙어 힘없어 죽으니 노사, 스스로 독약을 먹거나 목을 매거나 떨어져 죽는 자살, 총알을 쏴서 죽이니 총살, 전쟁터에서 전쟁을 하다가 죽으니 전사, 심장마비로 갑자기 죽으니 급사, 이루지 못할 사랑을 탓하다가 죽어
버리는 정사, 사랑을 하다가 배위에서 죽으니 복상사, 목매달아 죽거나 목 졸라 죽이니 교사, 의리있게 같이 죽으니 동반사, 집을 떠나 타향에서 죽으니 객사, 옥살이 하다 감옥에서 죽으니 옥사, 굶어 죽으니 아사, 얼어 죽으니 동사, 떨어져서 죽으니 추락사, 아무도 모르게 죽여 버리니 암살, 떼죽음을 당하니 몰살 등등...

이런 여러 가지의 방법가운데 한 방법을 스스로 골라 택해서 죽으면 자살이 되고 남의 손에 의해서 시행이 되어 죽으면 타살이 된다. 자살은 하늘에서 내리는 벌이 있고 타살은 법이 내리는 법이 있으니 죽을 때 죽더라도 때가 되어 죽기를 기다려야 한다.억울한 죽음이 있다. 돈 들여 관광을 갔다가 버스가 큰 사고를 일으켜 생각지도 못한 죽음이다. 봄철 가을철, 돈 들여 관광길에 나섰다가 참변을 당한 사람들을 두고 뭐라고 말을 해야 할까?


돈 주고 황천길을 샀다고나 해야 할까? 기약없는 것이 죽음이다. 사는 것도 마찬가지다. 한치 앞을 모르고 산다. 다만 사는 방법만 다를 뿐이다. 사는 방법이 다르니 죽는 방법도 다르다. 남에게 선을 행하고 스스로 착하게 산 사람은 죽을 때도 곱게 죽는다. 살인을 하거나 강도짓을 하던 사람은 죽을 때에 곱게 죽지 못한다.아무리 얼굴 화장을 잘하고 옷을 잘 차려 입어도 머리를 박박 깎고 회색의 장삼자락을 걸친 비구니만 못하고 아무리 좋은 집에서 살며 아무리 좋은 차를 으시대며 타고 다녀도 절집을 떠나 지팡이 하나에 몸을 의지하고 대장경 한 구절을 입에 물고 길을 가는 행자스님의 평화만은 못하다.

한 세상 사는 방법을 가르친 지침서는 세상에 두 종류다. 학벌 좋은 여러 사람이 모여 명석한 두뇌와 경험을 살려서 만들어 놓은 육법전서와, 학벌도 없고 별로 배운 것도 없는 한 사람이 만들어 놓은 한권의 성경책이나 대장경, 법이란 테두리 안에서 하지 말아야 할 것들을 억지로 지키며 사는 방법도 어느 정도는 편한 얼굴로 누워있는 데에는 도움을 주겠으나 그 법은 완전치가 않아 지금도 만들어지고, 보충되고 있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한권의 성경책이나 대장경은 어느 한 구절 수정하거나 보충할 필요도 없이 평화스러운 얼굴로 죽는 방법을 지금까지 쉽게 가르치고 있다. 일생을 가난하게 살았지만 내 어머니와 내 아버지는 평화스러운 얼굴로 누워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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