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공지영의‘ 부릅뜬 눈’

2011-10-26 (수)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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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들고 불편해도 부릅뜬 눈으로 세상의 현실 에 직면해야 합니다”

대한민국을 뒤흔들고 있는 영화 ‘도가니’의 소 설 원작자 공지영씨의 말이다. 지난 주말 LA에서 만난 공 작가의 이 말이 잔향으로 남 아 귓가를 맴도는 것은 그녀의‘ 부릅 뜬 눈’이 기어이 세상을 바꿔갈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목도하고 있기 때문 이다.

공씨의 동명소설을 원작으로 지난 2000년부터 5년간 한 청각장애 학교 에서 벌어진 청각장애 학생들에 대 한 교장과 교사들의 비인간적인 성폭 력과 학대 사건을 다룬 영화 ‘도가니’는 전국민을 분노에 떨게 하면서 가능하지 않게 보였던 변화의 거대한 함성을 만 들어내고 있다.


관객과 네티즌들에 의한 사건 재조사 요구가 거세고, 학교를 폐교하고 관련법을 강화해야 한다 는 여론이 확산되면서 이미 사법처리가 끝난 사건 이 재조사되기 시작했고 장애인 성폭력범죄와 사 학재단 비리에 맞설 법과 제도를 개선하기 위한 작업도 착수됐다. 변화가 시작되고 있는 것이다.

공 작가는 “힘들어도, 불편해도 눈을 감아서는 안됩니다. 혐오스럽다고, 불편하다고 외면해서는 안됩니다. 이 사건을 취재하면서 비인간적인 학대 와 성폭력을 자행한 이 학교의 교장과 교사들은 바로 이 점을 교묘하게 이용하고 있다는 것을 깨 닫게 됐습니다. 혐오스럽고 불편하지만 현실을 외 면하지 말고 직시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이 작품 을 시작했습니다”라고도 말했다.

부릅뜬 눈으로 불편한 진실에 직면하기 시작 할 때 비로소 세상의 변화도 시작된다는 것이다.

한 달이 넘도록 전 세계를 휩쓸며 변화의 단초 를 만들어가고 있는‘ 월가를 점령하라’ 시위도 출 발은 눈을 부릅뜨고 세상의 현실과 직면해 분노 와 저항을 시작했던 30여명의 청년 들이었다.

수백만명의 사람들이 집과 일터 를 잃고 거리로 나앉게 되었지만 아 무도 책임지지 않고 누구도 처벌받지 않았고, 엄청난 규모의 보너스를 챙 기며 여전히 권력의 중심에서 건재 한 탐욕스러운 금융자본과 권력의 검 은 유착. 이 불편한 진실에 눈 부릅뜨 며 시작한 주코티 공원 청년들의 분 노와 저항이 세상을 뒤흔들고 있는 것이다. 우뚝 선 리더도, 단일화된 조직도 없이 시 작된 이 시위가 전 세계를 휩쓸며 5주째 확산되 고 있는 것은 ‘타락한 금융자본’과 ‘불평등한 경 제구조’라는 불편한 현실에 눈 뜨면서 시작된‘ 견 딜 수 없는’ 분노가‘ 저항’이라는 행동으로 구체화 되고 있기 때문이다.

불편한 진실을 외면하지 않고 직면하는 한 사 람의 부릅뜬 눈. 그리고 이 한 사람의 작은 외침 은 수많은 사람들의 함성이 되어 세상을 바꾼다. 김대중 대통령은 생전에 이런 말을 남겼다.“ 세 상을 바꾸기 위해서는 정부와 권력을 옳은 소리 로 비판해야 한다. 그렇게 못하는 사람은 작게는 인터넷에라도 글을 올리고, 하다못해 담벼락을 쳐 다보고 욕을 할 수도 있다. 하려고 하면 너무나 할 수 있는 일들이 많다”

먼저 세상의 불편한 진실에 감았던 눈부터 부 릅 떠보자. 여기서 출발하는 것이다.

김상목/사회부 부장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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