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병마와 인간

2011-10-08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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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욱 객원논설위원

10여 년 전 플러싱에서 크게 목회하던 한 목사가 있었다. 100여명의 교인들이 있을 때 이 교회에 부임한 목사는 온 열정과 목숨을 다해 목회에 전념했다. 교인들은 부쩍부쩍 늘어 1,000여명이 넘어섰다. 교회 헌금도 수십만 달러에서 수백만 달러로 늘어났다. 담임목사와 온 교인들이 모두 열심이어서 교회는 점점 부흥해 갔다.

목사는 자체 교회를 위한 목회뿐만 아니라 세계 선교에도 관심을 갖고 많은 후원을 했다. 미국교단에 소속된 이교회는 교단 내에서도 미국교회들을 제치고 교단 재정을 위한 선교헌금을 가장 많이 내는 교회가 되었다. 이렇게 교회가 부흥되고 있을 때 목사에게 달갑지 않은 손님이 찾아왔다. 병이었다. 진단 결과 췌장암이었다. 교인들은 릴레이로 담임목사의 회복을 위해 열심을 다해 주야로 기도했다. 그러나 목사는 6개월을 넘기지 못하고 하늘나라로 갔다. 60대 초반이었다.


뉴욕에서 여행사를 하면서 시를 쓰는 한 시인이 있었다. 열심히 일하고 장로로도 충실히 교회를 섬기던 그에게도 반갑지 않은 손님이 찾아왔다. 병이었고 진단결과는 췌장암이었다. 몇 달 후 그도 세상을 하직하고 말았다. 60대 말이었다. 세계 3대 테너로 불리었던 이탈리아 성악가 루치아노 파바로티. 거대한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그의 힘차고 아름다운 목소리는 듣는 이들에게 큰 감명을 주고도 남았다. 그런 그에게도 반갑지 않은 손님인 췌장암이 찾아왔다. 2007년 9월6일 71세로 세상을 하직하고 말았다.

세계 최초의 PC개발자 스티브 잡스(Steven Paul Jobs). 애플컴퓨터로 PC시대를 만든 후 아이팟과 아이폰에 이어 테블릿PC 아이패드를 만들어 포스트PC시대를 주도한 PC계의 거장이다. 그는 2004년 췌장암 진단을 받고 수술, 2009년 간이식수술까지 했다. 긴 투병생활 끝에 결국 병마를 이기지 못하고 지난 5일 세상을 떠났다.

잡스는 미혼모(조앤 캐럴 시블)의 아들로 샌프란시스코에서 태어나 산타클라라에 사는 양부모에게 입양됐다. 초등학교 시절 학교를 자주 빼먹는 비행소년이었다. 중·고교를 마친 잡스는 오리건 주 리드대학교에 입학해 철학을 전공했으나 1년도 안하고 중퇴했다. 그리고 세계 최초의 비디오게임 회사인 아타리에 입사했다. 1976년 스티브 워즈니악과 동업으로 애플 컴퓨터를 설립했고 개인용 컴퓨터 애플I을 공개해 세계문화를 바꾸는 계기를 제공했다. 1984년 IBM에 대항하여 그래픽 사용자 인터페이스를 탑재한 애플 리사를 내놓았다. 하지만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가 너무 비싸 실패했고 매킨토시 프로젝트가 IBM에 비해 너무 비싸 또 실패했다.

1985년 경영일선에서 물러난 잡스는 넥스트사를 설립했고 컴퓨터그래픽회사를 인수해 할리우드 최고의 애니메이션 회사로 키웠고 ‘토이스토리’로 큰 성공을 거두었다. 1997년 넥스트가 애플에 인수되며 다시 애플로 돌아온 잡스는 10억 달러의 적자였던 애플사를 한 해 4억 달러의 흑자회사로 탈바꿈시키며 세계 최고경영자가 되었다.구글의 CEO를 역임한 에릭 슈미트는 잡스를 평해 “이 시대 최고의 경영자”라고 칭송한 바 있다. 다른 암 보다도 췌장암에 걸리면 6개월이 시한부라 한다. 그런데 스티브 잡스는 췌장암 수술을 받고도 7년이나 더 살았다. 돈이 많아 최고의 수술을 했는지는 모르나 결국 그도 병마
앞에선 지푸라기와 같은 약한 인간임을 보여주고 말았다.

병이란 언제 찾아 올지 알 수 없는 불청객 같은 존재이다. 아무리 건강해도 암 같은 병이 찾아 와 몸을 헤칠 때엔 강철 같던 몸도 흐늘흐늘 허물어지고 마는 것이 몸이다. 그러니 큰 소리 치고 살 것이 아무 것도 없다. 사는 동안 건강하다면 겸손하게 머리 숙여 하늘에 감사하고 오늘을 즐겁게 사는 것이 가장 좋은 것 아닐까.교회를 부흥시켜 많은 목사들에게 존경받던 목사. 시인으로 사업가로 사람들에게 존경받던 장로. 세계 음악인들의 흠모를 한 몸에 받았던 루치아노 파바로티. 퍼스널 컴퓨터(PC) 최초개발자로 컴퓨터문화를 세계문화에 접목시킨 전설 같은 주인공 스티브 잡스. 모두 병마(病魔) 앞에선 꼼짝 못하고 손을 들고 말았다. 이게 인간이다. 너무 잘 난체 하지 말고 살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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