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드디어 뉴욕도 터져요

2011-10-07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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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병임(논설위원)
세계 제일의 도시 뉴욕 지하철에서도 드디어 휴대폰이 터지는 모양이다. 맨하탄 첼시 지역을 중심으로 6개 지하철역에서 지난달 27일부터 휴대폰과 무선 인터넷 서비스가 가동되었다.메트로폴리탄 교통공사(MTA)는 올해 말까지 타임스퀘어와 헤럴드 스퀘어, 콜럼버스 서클, 라커펠러 센터 등의 31개 지하철 역사에 휴대폰과 무선인터넷 서비스망을 확대할 것이라 한다. 오는 2016년까지는 뉴욕 시내 277개 모든 지하철역으로 서비스가 가능하다고 한다. 이에 ‘참
으로 반가운 소식’이라는 사람도 있지만 ‘지하철안의 평화가 사라졌어’하는 사람도 있다.

오래 전에 한국을 방문했을 때 지하철에서, 그것도 터널을 달리는 지하철 안에서 전화가 걸려오고 아무런 잡음 없이 통화를 하면서 얼마나 놀랐는 지 모른다. ‘문명 서울’이 ‘최강대국 미국’같았다.“어떻게 달리는 지하철 안에서 통화할 수가 있지?” 하자 친구는 “왜 뉴욕 지하철에서는 전화가 안돼?” 하고 의아하게 물었다.“뉴욕 지하철은 이동통신 기지국을 설치하기에 워낙 광범위하고 복잡한 구조에다 시설이 노후화되었어. 서울은 집약된 공간이라 초고속 통신망이 개발되면 가장 실험하기 좋은 시설과 여건을 지녔고....” 그날, 궁색한 변명을 해야 했었다.

한국보다 무려 15년이나 느리게 이제야 지하철 휴대폰 서비스가 시작되었다는 소식을 대하며 앞으로 뉴욕 지하철 풍속도가 달라지겠구나 싶다.서울 지하철 안 여기저기서 전화벨이 울리면 너도 나도 전화기를 들어 “응, 나야” 하며 받아서는 다른 사람 시선은 상관없이 온갖 사적 얘기를 미주알고주알 하는 것이 짜증과 동시에 저절로 머리에 입력되었다. 아무리 안들으려 해도 한국말이 귀에 쏙쏙 들어오니 피해갈 도리가 없었다. 그런데 이곳에서는 온갖 언어가 다 들려올 것 아닌가.


퀸즈 지역을 오가는 지하철 안에서는 영어, 스페니시, 중국어, 한국어, 이태리어, 불어 등, 그야말로 수십개 언어가 다 통용될 것을 상상하니 재밌기도 하고 엄청 시끄러울 것도 같다.퀸즈에서 브롱스나 브루클린을 오가는 사람은 보통 한시간동안 지하철을 탄다고 하면 그 시간동안 업무를 볼 수도 있겠다. 하지만 빌딩 한 채를 전화로 사고파는 사안이 아닌 다음에야 복잡한 지하철 안에서 뭐 그리 급할 것이 있을까.오히려 직장 상사나 엄한 부모로부터 ‘지하철 안에서 전화 터지는데 왜 안받았냐’고 질책이라도 받으면 그날로 휴대폰은 열쇠 없는 족쇄가 되는 셈이다.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과의 소통을 위한 이 전화는 우리 생활상에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특히 한국에서는 참으로 획기적이고 경이적인 발전을 이뤘다.
1960, 70년대 한국에서 학교를 다닌 사람들은 초, 중학교 시절 집에 전화 한 대가 있으면 부자라는 소리를 들었다.학기초에 담임선생이 가정환경조사라는 것을 하면서 “집에 전화 있는 사람 손 들어” 하면 몇 사람이 손을 들었다. 전화 한 대 값이 집 한 채 값이던 시기도 있었다.

더 오래전인 1896년, 근대문명의 도래를 알리는 전화가 처음 설치되었을 때 조정의 풍경은 미소가 나온다.고종은 집무실과 정부 각 부처에 전화를 설치하여 정무를 보았다. 전화가 울리면 대신들은 큰절을 네 번 하고 무릎 꿇고 앉아서 전화를 받았다. 고종이 승하한 뒤에는 순종이 고종의 능에 전화를 설치하여 아침저녁으로 전화를 통해 곡을 올리기도 했다고 한다.현재의 한국은 ‘1인당 휴대폰 2대’ 시대로 돌입, 세계에서 가장 비싼 통신비를 지출하는 나라가 되었다.

이제 뉴욕도 지하철에서 핸드폰이 터지는데 그것이 박수칠 일인지, 스트레스 받을 일인지, 그래도 분명한 것은 문명이 발달하면 그에 따라 사람도 따라가야 한다는 생각이다. 다만, ‘전화기 없는 세상에 살고 싶다’는 비명이 나오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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