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고전 다시 보기

2011-09-30 (금)
크게 작게
민병임(논설위원)
사는 것이 적막고도에 있는 것 같을 때, 문밖만 나서면 여기저기 부비트랩이 설치되어 있는 것처럼 보일 때 문밖을 나서 발 한걸음 떼기가 어렵다. 요즘 되는 장사가 없고 새로운 직업 찾기도 쉽지 않으니 사는 것이 힘들다는 사람이 주위에 많다. 사람들은 누구나 자신은 열심히, 치열하게 살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사는 형편이 어제나, 오늘이나 조금도 나아지지 않는다면 앞날을 꿈꿀 수가 없다. 장래 계획을 세울 수가 없는 것이다. 이럴 때 가끔 2,000년전, 1,000년 전 세상은 어땠을까 궁금할 때가 있다. 과거 그 어느 세상에서 살기가 지금보다 나았을까, 그때도 이렇게 세상 살기가 힘들었을까 싶은 것이다.
2,000년 전 세계는 중국, 인도, 그리스, 헤브라이 문명이 다른 문명과의 교류를 위해 문호를 개방하던 시기였다. 중국 한무제는 장건을 서역으로 파견하여 동양과 서양을 잇는 실크 로드를 개척했고 한반도에는 신라, 고구려, 백제가 있었다.

하지만 그때 팍스 로마나 시대를 구가하던 로마는 귀족들의 사치와 도덕적 퇴폐로 병들어 가고있고 수많은 노예와 식민지 주민들은 굶어 죽어가고 있었다.
1,000년 전의 세계는 또 어땠을까. 유럽 각지에 토지를 매개로 한 주종관계가 성립된 봉건제도가 완성되었고 제일 밑바닥에는 농부이자 반 노예인 농노가 있었다. 200년에 걸친 십자군 전쟁도 시작되었다. 한반도에는 936년 고려가 후삼국을 통일하여 막 날개를 펴고 있었다. 이때도 개방화와 세계화가 세계의 화두였다. 앞으로 1,000년 후 세상은 어찌 변할까? SF영화의 단골 소재인 냉동인간들이 부활하지 않을까? 불치병을 앓던 냉동인간들이 치료법이 개발되면서 깨어 일어나 1,000년 전에 태어난 20세 청년이 거리를 활보하는 일이 있을 수도 있겠다. 스타워즈, 혹성 탈출 등의 영화에서 본 우주전쟁이 일어날 수도 있겠고......

2,000년전, 1,000년전, 지금에도 변함없는 것은 사람들의 내적, 외형적 모습이다. 그리고 그때나 지금이나 가장 중요한 것은 먹고 사는 일이다. 세상 살기에 편하라고 문명은 발전하고 있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서민들의 생활방식은 별반 달라진 것이 없다.1세기 로마시대 시민이든 10세기 유럽의 농부든 평소엔 농사를 지으나 전쟁이 일어나면 병사로 나가야 했듯이 지금도 먹고 살기위해서 일터로 나가서 생존경쟁에 나서고 있다.


깊은 가을밤이 다가오면서 어떻게 살아야 하나 고민하지만 올바른 해답이 나오지 않을 때 고전(古典)을 읽어보자.뉴욕에서 반평생을 보낸 백남준은 평소 잠자리 머리맡은 물론 여행 가방 안에 사마천의 ‘사기’(史記)를 넣고 다녔다고 한다.그리고 “사기를 읽느라고 십 오년을 보냈으나 아직도 전도요원(前途遼遠), 내 생전에 미칠 지나 모르겠으나 그래도......”1981년도 작품으로 TV 브라운관 유리판 위에 여러 색을 물감으로 낙서를 한 듯 이렇게 글귀를
남겨놓았다. 비디오부터 인공위성까지 눈부신 기계 문명을 쥐고 거침없이 휘두르며 한세상 살다간 백남준도 아이디어와 사색의 원천은 고전에서 얻은 것이다.

그 사기는 어떤 책일까? 기원전 100년경에 중국 한나라에 살았던 사마천이 기원전 1000년 전에서 기원전 100년경까지 중국에서 활약한 여러 사람들의 삶에 대한 글이다. 사기열전에 나오는 인물은 200명이 넘는데 각각의 인물이 최선을 다하여 난세를 사는 모습이 나타나있다.과거에도 오늘날에도 고전 속 인물들은 살아 움직이며 우리에게 교훈을 주고 있다. 혹자는 ‘고전은 생명을 다한 과거가 아니라 현재라는 줄기와 미래는 열매로 이어지는 나무의 뿌리와 같다’고 했다. 가을이 오고 밤이 깊어지면서 TV를 끄고 책을 손에 들어보자. 성경 다음으로 많이 읽히는 동양최고의 고전 삼국지(三國志)도 좋다. 삼국지 세 번을 읽으면 세상의 이치를 깨닫는다고 하는데 한번 그래 볼까 한다.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