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남북경협과 한반도 통일

2011-09-27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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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니 리(한미정치발전연구소장)

상업, 광산, 어업 등 다양한 분야에 걸친 자생적 신흥재벌이 정부의 통제를 벗어나 북한경제의 실질적 주인으로 부상하고 있다. 이미 배급제가 무너진 북한사회는 2002년 7.1 경제관리개선조치 이후 시장경제요소를 국가가 공식적으로 수용하고 있다. 최근 김정일 정권의 중앙통제정치가 약화되며 시장경제를 중심으로 경제체제의 변화에 가속도가 붙은 것이다. 7.1조치는 북한의 사회주의 계획경제체제에 대한 전면적인 수정을 요구하는 파격적인 조치였다. 이는 당시 남북정상회담과 북미관계 정상화에 대한 전략적 제고와 북일 정상회담 등 국제환경의 변화에 보조를 맞추기 위한 획기적인 경제개혁정책이었다.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부정하던 북한이 임금 및 물가 현실화, 환율인상 및 배급제의 단계적 축소에 따른 기업의 자율권 확대와 인센티브제 도입 등 시장경제 요소를 도입하게 된 것이다. 그로부터 10년, 북한은 이미 상당 수준의 민간자율경제가 자리를 잡아가며 개인의 상권을 중심으로 형성된 신흥재벌이 출현하는 등 자본주의 경제체제로 탈바꿈하고 있다.


북한이 자유주의 경제체제로 전환되고 있다면 김정일의 러시아 방문은 경제개방의 기폭제로 작용할 것이다. 이는 핵개발에 오랫동안 발목이 잡혀 등한시하던 경제개발을 국가전략적 차원에서 장기적으로 추진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이다. 그동안 추진되던 남북경협은 이명박정부의 대북강경정책으로 실상 퇴보되었다. 그러나 러시아 가스관 설치는 기존의 남북경협의 차원을 넘어선 국제적인 사안으로 향후 한반도 종단철도와 유라시아 종단철도 건설의 모델이 되어 한반도가 국제무역시장의 중심지로 거듭나는데 교두보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한반도종단 가스관을 통해 러시아의 값싼 석유와 천연가스가 한국에 공급되면 이는 다시 일본을 비롯한 동남아시아권 전체로 퍼져나갈 수 있다. 북한경유 사용로로 인한 막대한 이득은 북한으로 하여금 한반도 철도나 유라시아 철도 건설사업에 더욱 적극적으로 매진하게 할 것이다.

한반도의 위치는 유럽과 대서양을 잇는 무역항 국가인 네델란드처럼 유라시아 대륙과 태평양을 연결하는 무역항 국가로서 세계무역의 중심역할을 하게 할 것이다. 그렇다면 남북경협을 위한 정치적 요인들을 짚어볼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남북경협을 한반도 발전의 전략적 차원에서 정치권에서 독립시켜 장기적인 사업으로 추진해야 한다. 김대중 정부에 의해 출발된 남북경협은 동북아 중심국가를 표방하던 노무현 정부에 의해 더욱 발전되었으나 이명박정부에 들어서 대북강경정책의 회귀로 실상 전면 중단된 것이나 다름없다. 또한 새정부 출범후 남북경협이 어떤 경로를 밟게 될지는 예측하기 어렵다. 반면 북한은 러시아와 경제개발에 주력함으로써 기존의 대중국 의존도 일변도에서 벗어나려는 전략적 선택을 하기에 이르렀다. 러시아도 북한과의 경제발전을 통해 중국견제는 물론 동북아에서의 입지강화에 더욱 박차를 가하게 된 것이다. 극동지역에서 자원수출로 인한 국내 경제활성화와 북한과의 관계강화에 따른 동북아에서 영향력 확대에 심혈을 기울이는 것이다.

6자회담은 그 기능을 상실한지 오래고 북핵문제는 국제사회에서 더 이상 주목받지 못하는 진부한 아젠다가 되었다. 여기에 김정일이 국내경제의 자율화에 따른 경제개방을 염두에 두고 러시아와 중국과의 관계강화에 몰두한다면 북한경제의 회생은 시간문제다. 중국은 국가적인 차원에서 북한개발전략에 착수해 향후 국제 무역중심지가 될 도시들에 이권을 선점하기 위해 혈안이 되어있다.
러시아 또한 유라시아 철도와 가스, 석유관 설치라는 인센티브를 통해 북한개발이라는 국책을 실효화시키려 하고 있다. 그럼에도 남북경협의 실질적 주인임에도 불구하고 한반도 통일시 그 많은 경제 이권을 중국과 러시아에 내어주게 될지도 모른다. 남북경협이 한국통일은 물론 동북아 중심국가의 초석이 된다는 거대한 전략적 틀안에서 북한문제를 접근하는 현명한 선택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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