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우리말 못 알아듣는 한글 전용 세대

2011-09-21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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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중돈(법정통역사)

퀸즈형사법원에서 한 젊은 한국인 청년의 재판이 있었는데 통역이 하는 한국말을 잘 알아듣지 못해 민망한 일이 벌어진 일이 있었다. 변호사와 검사가 형량 협상 (프리바겐)으로 재판이 끝나게 되어 있었고 판사는 이 합의된 협상을 피고인인 본인에게 확인하는 절차에서 일어난 일이다. 사건의 혐의가 워낙 미미한 것이어서 검찰 측이 조건부로 기소유예 처분을 해주기로 합의를 본 것이었다. 이 통보를 받은 판사가 본인인 피고인에게 확인하는 질문을 하는데 이 질문의 뜻을 알아듣지 못하는 것이었다.

한국에서 언제인가부터 한글전용 정책을 시작하고부터 학교에서 한문을 가르치지 않고 있다. 이때부터 이들은 우리말을 한글로만 쓰고 배워 왔기 때문에 우리말의 기초가 된 한문을 이해하지 못하고 또 우리말의 70%가 한문에 기초한 말임에도 불구하고 한글로 그 발음만 배워왔기 때문에 우리말의 정확한 뜻을 이해하지 못하거나 오해하고 있는 많은 문제가 생기고 있다. 한글전용 세대가 성년이 되어가고 있는 지금 이곳 미국 법정에서도 한국어로 통역해주는 우리
말을 이해하지 못하는 젊은이들이 늘고 있다. 특히 법정에서 쓰고 있는 한국의 법률용어는 그 전부가 한문에 기초한 것인데 한문을 배우지 않은 세대들이 이들 법률용어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 생기는 현상이다. 이들이 이해하지 못해 곤란해 하는 용어들이라 하지만 난해한 법률용어가 아니라 거의 상식 용어에 속하는 말인데도 불구하고 일상으로 자주 쓰는 말이 아니다 보니 그 뜻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다.


그 용어들이란 겨우 기각(棄却), 기소(起訴), 유예(猶豫), 보호관찰(保護觀察), 유죄(有罪)시인(是認) 같은 상식에 속하는 단어들인데 이런 말을 이해하지 못하는 청년들이 너무 많다. 그렇다보니 재판이 끝난 다음에 법정 밖에서 다시 쉬운 말로 설명을 해주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렇지만 법정에서 직접 대답을 해야 하는 경우가 생기면 마치 통역이 제대로 되지 못해 알아듣지 못하
는 것 같은 오해를 받는 경우가 많다. 한문에 기초한 우리말이 분명히 우리말임에도 불구하고 한글 전용이라 하여 그 기초한 한문을 가르치지 않으니 결과적으로 우리말을 바로 배우지 못하는 우를 범하고 있는 것이다.

짐작컨대 한글 전용을 주창한 학자들의 주장의 근거는 한문을 쓴다는 것이 중국어를 쓰는 것으로 착각한 일부 한글학자들의 잘못된 판단에서 온 것이라 믿어진다. 그렇지만 우리말의 70%를 차지하는 한문에 기초한 우리말은 중국어가 아니라 엄연히 우리말이요, 중국 글자인 한자를 이미 우리 글로 다시 태어나게 한 결과일 뿐이다. 법정통역관의 자격시험에 많은 사람이 응시하고 있는데 이들의 시험결과를 채점하는 과정에서 꼭 같은 현상을 발견하고 있다. 응시자들 중에 한글전용 세대에 속하는 젊은 응시자들의 거의 모두가 한문에 기초한 우리말인 법률용어를 알아듣지 못하는 이유로 불합격하는 경우가 거의 대부분이다. 이들은 일찍부터 미국생활을 한 탓으로 영어에는 거의 문제가 없는데도 한국어 통역이 되려고 하는 사람이 한국어를 바로 이해하지 못해 불합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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