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시엽
W.A. 고무 실험실장
일전 집안 서재에서 책을 보고 있는데 갑자기 종아리가 따끔했다. 평소 그랬듯이 무시하고 무덤덤하게 지나치거나, 반사적으로 물린 부위를 겨냥해 손바닥으로 한 대 올려붙이고 나면 아무 일도 없었던 듯 상황이 끝났어야 옳았다. 집 안팎에서 늘 보는 개미한테 물린 걸 화제 삼아 떠벌려야 할 정도로 내 삶이 그토록 따분한 편은 아니니까. 그런데 이번에는 입 다물고 잠자코 지나칠 수가 없다.
“쪼그만 게 어쩜 요렇게 따끔하게 물지?”
개미한테 물리면 따끔한 거야 말을 못했을 뿐 젖먹이 때부터 잘 아는 사실 아닌가. 그런데 마치 60여 평생 처음 물려본 듯 그런 상식 같은 사실이 왜 새삼스레 강한 의문으로 다가왔는지 모르겠다. 그 날 나를 문 놈이 수퍼 개미여서 유별나게 세게 문 것 같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내 피부가 최근 자극에 지나치게 예민해진 탓도 아니었다.
슬그머니 엄지와 검지 손톱으로 내 손등을 꼬집어보았다. 별로 아픈 느낌이 전달되지 않았다. 좀 더 힘을 주어 꼬집었다. 여전히 개미에게 물렸을 때의 따끔한 그 맛이 재현되지 않았다. 왠지 개미에게 한방 먹은 기분이었다.
나는 개미 한 마리를 생포했다. 길이가 3mm도 채 안 되는 미물이었다. 진행방향을 보아야 겨우 앞뒤를 분별할 수 있을 정도였다. 더군다나 턱은 육안 관찰이 거의 불가능했다. 놈을 한방에 눕혀 고배율의 확대경으로 관찰해보았다. 좌우로 작동하는 집게를 갖춘 턱이 클로즈업되며 제법 위용을 드러냈다. 육안으로는 식별조차 어려운 작은 턱에서 어떻게 그런 따끔한 맛이 나올까?
혹시 내가 ‘따끔한 맛’의 비밀에 최초로 의문을 던진 게 아닐까 하는 즐거운 상상을 하며 인터넷으로 자료를 검색하기 시작했다. 역시 한발 앞서 ‘따끔한 맛’의 비밀을 들여다본 과학자들이 있었다. UC 버클리의 생체역학 교수인 쉐일라 파텍 교수와 공동연구팀이 몇 해 전 미국 과학원(National Academy of Sciences) 회보에 발표한 ‘집게 턱 개미’에 관한 연구 결과가 얼른 눈에 잡혔다.
연구팀은 날아가는 총알을 잡아내는 초고속 첨단 촬영기를 이용해 중남미에 서식하는 ‘집게 턱(Trap-Jaw) 개미’가 물때 턱의 속도가 시속 100Km에서 최고 180Km에 이른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집게 턱 개미’의 무는 장면은 보통 카메라로는 촬영이 불가능하다. 이 개미의 턱은 동물의 신체기관 가운데 가장 빠른 속도로 작동하며 중력의 약 10만 배의 가속도를 낼 수 있다고 한다. 이 속도는 눈 깜짝하는 사이보다 약 2,300 배나 빠른 것이다. 이때 개미 몸무게의 300배가 넘는 힘이 순식간에 터져 나온다.
물체를 가속시키면 큰 힘을 얻게 된다는 것은 아주 간단한 물리학 법칙이다. 나를 문 개미의 공인기록을 알 수 없으나 ‘집게 턱 개미’의 세계 신기록에 크게 뒤진다 하더라도 ‘따끔한 맛’은 빠른 속도로 작동하는 강한 턱에서 나온 것임에 틀림없다.
‘따끔한 맛’을 보고 나는 이제껏 모르던 개미에 관한 놀라운 새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쯤해서 개미 이야기를 끝맺을까 했는데 개미는 따끔한 맛을 통해 한수 제대로 배우라는 듯 집요하게 나를 물고 늘어졌다. 무는 개 돌아보듯이 나는 무는 개미를 돌아보았다.
개미는 지극히 작은 ‘따끔한 맛’을 통해 인간이 오감을 통해 저지르는 감각적 판단의 오류와 감각적 세계의 허구를 고발하려는 것 같았다. “작다고 약한 게 아니며, 보이지 않는다고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요. 냄새가 난다고 다 더러운 게 아니며, 귀에 거슬린다고 다 잡소리가 아니에요. 입에 쓴 게 다 독이 아니요, 보기 흉하다고 다 추한 게 아닙니다. 반짝이는 게 다 금이던가요. 진리는 눈에는 잘 보이지 않아요. 약하게 보이는 게, 실은 가장 강할 수가 있지요. 비천한 것이 가장 귀한 것일 수가 있고요. 작고 약하고 비천하게 보인다고 무시하지 마세요. 작고 연약한 아기로 오신 예수님이 약자이던가요? 따끔한 맛에 정신 차리면 뜨거운 맛을 피할 수 있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