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립스틱 샘플 유감

2011-09-16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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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파리, 밀라노, 런던, 세계적 대도시 4곳의 콜렉션이 한 해의 패션을 좌우한다. 1년에 두 번 봄가을로 일주일간 뉴욕 패션 주간이 열리고 이맘때면 늘씬한 모델과 전세계에서 몰린 바이어, 카메라를 맨 기자들을 비롯 몰려든 패션 관계자들로 뉴욕은 분주하다.

그동안 뉴욕 콜렉션에는 로칼에서 성장한 한인 1.5세 디자이너들이 코리언 바람을 일으키기도 했고 한국 경제가 발전하면서 한국 디자이너들도 개인 브랜드로, 단체로 대거 참여하여 쇼를 열기도 했다. 한국 디자이너 뉴욕콜렉션에 가면 간혹 객석 의자위에 미니 조각보나 작은 스카프, 스타킹 등 지극히 한국적인, 깜찍한 선물들이 놓인 경우가 있었다. 대단한 것은 아니고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소품이지만 ‘쇼는 짧지만 선물은 남는다’고 좋아라 하는 관객도 있다.

지난 9일 링컨센터 에브리 피셔홀에서 개막된 컨셉 코리아(concept Korea) IV에 400명 이상의 한인과 외국인들이 모여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입장하면서 참가 디자이너들의 소개서를 찾았는데 행사장에는 비치되어 있지 않았다. 모델들이 디자이너 옷을 입고 서있는 참가 디자이너 5개 팀 부스 앞에 디자이너 카탈로그가 놓여있다면 좋을 텐데 했다. 퇴장하는 데 입구에서 컨셉 코리아가 인쇄된 백을 하나씩 나눠 주었다. 백 안에 찾고 있던 디자이너 5팀의 카탈로그와 이상봉 개인 카탈로그가 있어 반가웠다. 또 그 안에 홍삼 캔디통과 미니 립스틱이 들어있었다.


립스틱은 당연히 아모레인 줄 알았는데 집어 들고 보니 시세이도였다. 순간 잘못 들어갔나 했다. 일본을 동시에 알리는 아시아 문화 컨셉이었던가? 그러면 중국산 비단 손수건도 들어있어야지 했다.‘도대체 왜 시세이도 네가 여기 들어간 것이냐?’ 하는 의문은 결국 전화기를 들게 만들었다.컨셉코리아측에서 지난 번에는 아모레 화장품을 입장객에게 선물했는데 이번에는 여의치 않아
일본 시세이도(shiseido)의 협찬을 받았다고 전했다.

시세이도가 무엇인가? 1827년 창립한 일본의 대표적인 화장품 회사로서 아모레 퍼시픽과는 경쟁 관계가 아닌가. 아무리 공짜가 좋다지만 이것은 받아서는 안되는 것이었다. 적어도 컨셉코리아 봉투에는 들어가지 않았어야 했다. 문화체육관광부와 대구광역시가 한국콘텐츠 진흥원, 한국패션산업연구원과 함께 뉴욕 패션위크에 컨셉 코리아를 출범시킨 것이 아닌가. 컨셉 코리아는 한국 디자이너들의 해외진출을 정부가 직접 지휘하며 그 비용을 국민의 돈으로 충당하는 글로벌 프로젝트가 아닌가 말이다.

왜 한국 패션을 홍보하는 자리에 일본 화장품을 홍보하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그리고, 대한민국 대표 화장품인 아모레 퍼시픽은 왜 이번에 협찬을 안한 것일까, 매년 할 수 없다고, 홍보할 데가 한두 군데냐고, 예산에 없었다고 말하지 말기 바란다.아모레는 동백기름으로 시작하여 1945년 태평양으로 창업했고 한국의 근현대사 화장품 역사를 쓴 회사이다. 천문학적인 숫자의 광고 홍보비를 쓰면서 1년에 단 두 번 컨셉 코리아에 홍보용 립스틱 400개(그날 400명이 다녀갔다) 예산이 그리 큰 것이었던가 싶다.

이민 온 지 오래 되어도 많은 50대 한인여성들은 ‘아무래도 아모레’를 쓴다.
나역시 처음엔 에스티 라우더, 랑콤, 엘리자베스 아데나 등 외국산 화장품을 이것저것 쓰다가 15년째 아모레 화장품만 사용하고 있다. 플러싱 단골 아모레 매장에 가면 내가 사는 기초 화장품 외에 샴푸, 린스, 영양크림 등 각종 샘
플을 한아름 준다. 그 샘플 받는 기분이 쏠쏠하다. 그 샘플이 다음번 방문에 정품을 사게 만든다. 이러한 홍보효과를 지닌 샘플 립스틱이 왜 컨셉 코리아에서는 제공되지 않았을까. 정말이지 컨셉코리아 백에 든 시세이도는 곤란한 존재다.

민병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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