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폰지 이야기

2011-09-13 (화) 12:00:00
크게 작게
찰스 폰지는 이탈리아계 이민자이다. 많은 이민자들처럼 그는 미국 땅을 밟았을 때 빈털터리였지만 큰돈을 벌어 보겠다는 꿈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이민자가 ‘아메리칸 드림’을 이루기는 예나 지금이나 쉽지 않았다. 식당 접시닦이로 취직한 후 웨이터까지 승진하지만 손님 돈을 훔쳤다는 이유로 쫓겨나고 만다.

그는 미국 꿈을 접고 캐나다 몬트리올로 올라가 작은 은행에 일자리를 얻는데 여기서 새로운 비즈니스 기법을 배우게 된다. 당시 다른 은행들의 예금 금리는 연 3%였는데 이 은행은 그 2배를 줬다. 당연히 손님 돈이 몰려들었다. 그러나 이 은행이 높은 이자를 준 것은 장사가 잘 돼서가 아니었다. 부동산 론이 부실 대출로 변하면서 이를 메우기 위한 돈이 필요했고 이자를 올린 후 몰려든 돈으로 비싼 이자를 준 것이다. 계속 돈이 들어오지 않으면 망할 수밖에 없는 구조로 결국 망했으며 은행 주인은 돈을 챙겨 멕시코로 도주했다.

다시 보스턴으로 돌아온 그는 이 수법을 그대로 이용했다. 당시에는 외국 우표를 미국 우표로 바꿔 주는 프로그램이 있었다. 제1차 대전 후 유럽 인플레로 달러로 표시된 미국 우표의 실질 가치가 이탈리아 우표보다 훨씬 높았다. 폰지는 이에 착안, 이탈리아 우표를 사 미국에 가지고 와 미국 우표로 바꾸고 이를 팔면 큰 이익을 남길 수 있다고 선전하며 투자가를 모집했다. 그러나 이를 실행에 옮기려면 복잡한 절차가 필요했고 비용도 많이 들었다.


그럼에도 처음에 투자한 사람들은 고수익을 얻을 수 있었다. 폰지가 나중에 투자한 사람 돈으로 첫 투자가들에게 돈을 지급했기 때문이다. 폰지한테 오면 떼돈을 벌 수 있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사람들은 집을 잡혀 모은 돈을 들고 그를 찾았다. 폰지는 불과 몇 달 만에 지금 돈으로 450만달러를 챙겼다.

그는 이 돈으로 호화 주택을 사고 흥청망청 했지만 그의 사기행각은 오래 가지 못했다. 이 모델은 새 투자가가 기하급수적으로 들어와야 유지될 수 있는데 이는 불가능했다. 보스턴 포스트가 그의 재정이 엉망이라는 기사를 쓰고 수사기관이 조사에 착수하면서 그의 마각이 드러났다. 투자가들은 그에게 맡긴 돈 대부분을 날리고. 그는 연방 및 주 교도소를 전전하다 브라질로 이민가 극빈 환자로 67세의 생을 마감했다. 그는 갔지만 그의 ‘폰지 사기’(Ponzi scheme)는 사기극의 대명사로 미국인의 머릿속에 아직도 남아 있다.

공화당의 유력 대선 후보인 릭 페리 텍사스 주지사가 미국인들의 80%가 지지하는 정부 프로그램인 소셜 시큐리티를 ‘폰지 사기’라 불러 논란이 일고 있다. 민주당은 물론이고 당내 경선을 놓고 그와 경쟁을 벌이고 있는 미트 롬니 전 매사추세츠 주지사도 이를 강력 비난하고 나섰다. 미국인들이 이를 좋아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두 부부가 일하는 평균 가정의 경우 평생 58만달러를 소셜 시큐리티 세로 내지만 90만달러를 찾아먹는다.

그러나 나중 투자가가 계속 돈을 부어야 먼저 투자가가 돈을 찾아갈 수 있는 것이 ‘폰지 사기’의 요체라 한다면 분명 소셜 시큐리티는 ‘폰지 사기’다. 지금 근로자와 기업이 열심히 내고 있는 월급의 12%가 넘는 세금은 이미 은퇴한 사람들이 타 갔다. 지금 일하고 있는 사람들이 은퇴해 이를 받으려면 다음 세대 근로자들이 세금을 내줘야 한다.

1930년대 소셜 시큐리티가 처음 시작됐을 때 20명의 근로자가 1명의 은퇴자를 부양했고 미국인의 평균 수명은 60대를 넘지 않았다. 지금은 3명의 근로자가 1명을 부양하며 80세까지 보통 산다. 앞으로 30년 후가 되면 2명이 한 명을 부양하고 평균 수명은 90세에 육박할 것이며 지급해야 할 소셜 시큐리티 부족분은 22조달러에 달할 것으로 추산된다.

소셜 시큐리티 세는 처음 2%로 시작했다. 최고 세액도 60달러이던 것이 그 후 40차례나 인상, 1만3,000달러로 늘어났다. 인플레를 감안해도 800%의 증가율이다. 현재 상태가 유지 될 수 없음은 자명하다. 공화 민주 양당은 은퇴자들을 자극해 표를 얻으려는 얄팍한 정치 산술을 접고 미국의 장래를 위협하는 이 연금제도를 어떻게 개혁할 것인지 진지하게 논의할 때다.


민 경 훈 논설위원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