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시작이 반이라지만...

2011-09-12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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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병렬 (교육가)

속담은 학생들이 재미있게 공부하는 자료이다. 그런데 어떤 것은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 있다. 그 중의 하나가‘시작이 반이다’였다. 시작이 어떻게 반까지 차지할 수 있겠느냐는 생각 때문이었다. 무슨 일이든지 시작하기가 어렵지 일단 손을 대면 반 이상은 한 것이나 다름이 없다니 지나친 과장이 아닌가. 그런데 이 속담에 실감이 실리게 된 것은 오랜 삶을 이어오는 과정에서다.

시작하는 것은 말, 몸짓, 일... 등 여러 가지다. 쉽게 말할 수 있었겠는데 끝내 하지 못한 말이 있다. 50년대 후반 필자에게 미국생활을 소개한 분한테 “굿모닝, 닥터 헤이워드”라는 인사말을 하지 못했다. 그 대신 웃으며 꾸벅 절을 했다. 쑥스러워 입을 뗄 수 없었다고 하더라도 영어의 시작이 부실한 출발이었다. ‘고맙습니다, 미안합니다, 실례합니다, 용서하세요’와 같은 말들이 친구를 사귈 수 있고, 사회를 부드럽게 하는 요술을 지녔다지만 익숙한 자기 말이 아닌 경우 더욱 힘든 일이다. 미국생활에 익숙한 분의 이야기다. 이웃 친구가 “Thank you”라고 말하자 자기도 모르게 “No”라는 대답을 하였으니 속상하단다. “아니에요, 별 것도 아닌데...”라는 느낌이었지만 상대방이 이해할 수 없다.


앞에 예거한 말들이 때로는 말문을 여는 시작이 될 수 있다. 청중의 귀가 솔깃하게 시작하면 성공할 가능성이 있다. 이 지역 학생들이“안녕하세요?” 하고 인사를 하게 되면 한국어를 배울 준비가 된 것이다. 그래서 첫 마디를 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어른들의 지혜이다. 한글 상표나 한국 간판을 눈여겨 보기 시작하면 한글을 읽을 준비가 된 것이다. 여러 가지 몸짓도 단순한 것의 반복으로 시작된다. 그 반복하는 몸짓에 익숙해지면 새로운 몸짓으로 옮겨가게 마련이다. 일하는 방법도 기계적인 반복부터 시작하다가 창의력이 자란다. 큰
일을 시작할 경우 기획이 치밀하고, 준비를 잘 갖춘다면 원활하게 성장할 것이다. 어떤 일이 예상한 대로 진행되지 않을 경우는 대부분이 시작할 때 기획이 허술하였음을 알게 한다.

각 가정의 중요한 사업은 가족의 화목과 건강, 바람직한 자녀교육, 안전한 경제 확립... 등이다. 이 중에서도 자녀 교육은 미래로 이어지는 중요한 일이다. 미국 이민이 서서히 시작된 지도 어느덧 반세기가 지났으니 자녀 교육관이 확립되었을 시기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문화교육을 소홀히 한다면 부모의 태만일 수 밖에 없다. 한국학교가 도처에 있고, 타민족까지 한국문화
교육에 흥미를 가지는 세태가 되었다.

여기서 강조하는 것은‘시작이 반이다’라는 속담이다. 9월은 새 학년이 시작이다. 이 때에 한국문화교육을 보탠다면 새로운 자극제가 될 것이다. 미국에서 태어나서 자랐지만 한국말에 익숙하고, 한국문화를 사랑하는 학생들은 부모가 현명한 판단력으로 실천한 자녀교육 덕택이다. 그것을 잘 알지만 이런저런 사정으로 미적미적 미루는 사이에 자녀들이 커버리면 얼마나 미안한가.

9월은 망설임에서 벗어나 자녀에게 한국문화교육을 시작하는 시기이다. 가정과 학교가 잘 협력하면 바람직한 효과를 올일 수 있다. 9월12일‘추석’은 좋은 학습 자료이다. 가정에서는 명절답게 지내고, 학교에서는 전통문화의 유래, 타민족의 추석과 유사한 행사 알아보기... 등으로 각민족의 전통문화에 관심을 가지게 하면 이상적이다. 아직도 ‘시작이 반이다’에 의견이 있는가. 있다. 시작이 반이라지만 때로는 ‘시작이 전체이다’로 바뀌었다. 무슨 뜻인가. ‘시작’의 중요성을 깨닫게 되었음을 말한다. 시작할 때 이미 목표가 분명하니까, 진행하는 방향을 따라가면 방황하는 시간을 절약한다. 치밀한 계획을 한 출발은 자신감이 있고 즐거움이 있다. 그렇더라도 실패할 수 있지 않은가. 그 때는 또다른 ‘시작’을 하면 된다. 몇 차례든지 새로운 출발점에 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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