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덤과 에누리

2011-09-12 (월)
크게 작게
조상옥(플러싱)

8월 중순이었다. 우리 강아지가 정기검진 날이라 한 동물병원 들렸다. 내 앞에 두세 마리의 개가 대기하고 있었다. 강아지를 기르는 사람은 얼굴도 성도 아무 것도 몰라도 자연스럽게 이야기 할 수 있다. 개주인과 대화는 그저 개자랑이다. 대화를 중단하고 치료 끝난 개를 받아들고 의사와 하는 이야기를 들을 수가 있었다. 얼마냐고 묻는다. 계산하더니 516달러라고 한다. 점잖게 생긴 중년부인이 조금 당황하는 듯 한다. 이렇게 비싸요? 400달러면 충분할 줄 알았는데 50달러 짜리 8장 꺼내고 비상금으로 지갑구석에 100달러를 꺼낸다. 빈 지갑을 꺼내 보이며 500달러밖에 없네요. 16달러 깎아 달라고 한다.

요즈음 아이들 이야기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좌우로 내젓는다. “선생님 개 두 마리다 놓고 가고 싶네요. 그럼 16달러는 다음에 가져오면 안되겠습니까” 똑같은 표정으로 고개를 좌우로 흔든다. 중년부인의 평화스럽던 얼굴은 사라졌다. “잠깐만 기다리세요 차에 가서 찾아볼께요” 5분도 더 걸렸다. 10분만에 돌아온 중년부인이 돈을 낸다. 지폐는 한 장도 없고 1달러 짜리 동전과 25전 짜리 동전 모두 합해서 16달러를 계산한다.

의사선생님 얼굴을 외면한 채 돌아서는 중년부인의 뒷모습은 차갑기만 하다. 그것을 보고 있는 나는 왜 허탈한 것일까. 16달러 깎아주던지, 아니면 다음에 가져오세요 하고 정겹게 보낼 순 없었을까? 돈보다 마음을 치료하는 의사가 됐으면 하고 생각해 보기도 한다. 사람 의사가 아니고 동물병원이라 야박한 것일까? 내 일도 아닌데 머리에서 서운함이 지워지지 않는 것은 왜일까? 덤이나 에누리 문화에서 벗어나지 못해서 그런것인가.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