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9.11과 세 가지 궁금증

2011-09-10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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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욱 객원논설위원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한다. 내일이면 9.11이 일어난 지 만 10년이 되는 날이다. 그동안 미국은 어떻게 변했나. 또 뉴욕은. 10년 전 그날을 생각하자니 마음이 아파 온다. 죄 없이 간 3000명에 가까운 영령들. 남편과 아내와 부모와 자식과 형제와 자매를 잃어버린 수많은 가족들. 그들에게 10년은 보통사람들의 100년에 해당할 것 같다. 10년이 지난 지금. 그동안 쭉 마음에 궁금한 것이 있어 왔고 지금도 그것은 궁금하다. 아마도 그 궁금증은 풀 수 없는 수수께끼가 될 런지도 모른다. 궁금증은 세 가지다.

첫째는 세계 최고의 강국인 미국이란 나라. 첩보에 있어서도 세계 제일을 자랑하는 미국이 어떻게 사전에 비행기 납치범들의 행보를 알지 못했는가? 난센스에 해당한다. 둘째는 소방대원들의 죽음을 불사한 용기이다. 그 날 343명의 소방관이 잿더미에 깔려 희생됐다. 소방관들 중에는 총책임자를 비롯해 최고참 소방관 2명. 그리고 21명의 소방대장도 포함돼 있다. 비행기에 박혀 불에 타고 있던 쌍둥이 빌딩. 건물 안에 있던 사람들이 너도 나도 살려고 건물을 빠져 나올 때 소방관들은 그 반대였다.


그런 용기는 어디서 나오는 걸까? 직업의식. 글쎄다. 어느 통계 중 미국에서 가장 용감한 사람이 누구인가? 라고 하는 질문의 답은 소방관이었다. 그들에게도 가족은 있다. 사랑하는 아내와 자식과 부모와 형제들이 있다. 그런 그들인데 직업의식 때문에 죽을 수도 있는 불구덩이에 자신의 몸을 불사르려 들어갈까. 아닌 것 같다.

직업의식은 사명(使命)의식과 같다. 그러나 소방관들에겐 사명의식을 뛰어 넘는 소명(Calling)의식이 있음에 분명한 것 같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디, 죽음을 마다하고 다른 사람의 생명을 건지겠다고 불구덩이에 들어갈 수가 있을까? 그런 소방관들이 있는 소방서를 뉴욕시는 그 숫자를 줄여나가고 있으니 시 정책이 잘못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세 번째 궁금증은 희생당한 사람의 가족들이 지난 10년간 어떻게 살며 지내왔는가? 이다. 매 주 얼굴을 보며 가깝게 지내는 지인 중의 한 사람이 있다. 교회의 장로이다. 그의 부인은 권사다. 그들에겐 두 아들이 있었는데 둘째이자 막내아들이 그날 쌍둥이 빌딩에서 하늘의 영령이 되었다. 그날 후로 그 가족들은 어떻게 지내오고 있나.앤드류 김. 앤드류의 어머니와 아버지. 그리고 그의 형. 그들의 아픔을 그 누가 알 수 있으랴? 아마도 그날 함께 희생된 사람들의 가족들만이 그 아픔을 알 수 있을 것이다. 10년이 지난 지금도 앤드류의 방은 그 날 그대로 있다. 언젠가는 다시 돌아올 지도 모른다고. 어머니의 슬픔. 금방이라도 돌아올 것 같은 자식의 방을 치울 수가 없다.

앤드류 부모를 10년 째 지켜보면서 많을 것을 깨닫고 있다. 그들의, 하늘이 무너질 것 같은 슬픔과 아픔을 견뎌오게 한 것은 신앙인 것 같다. 나이 70이 된 김 장로.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성가대를 하며 봉사하고 있다. 봉사뿐만 아니다. 앤드류 김 재단을 만들어 재정이 넉넉지 못한 학생들에게 계속 장학금을 지급해오고 있다. 앤드류의 어머니도 마찬가지다. 교회를 열심히 다니며 봉사하고 있다. 언젠가 교회에서 발간하는 교회지에서 앤드류 어머니의 시를 본 적이 있다. 아들을 보고 싶어 하는 그 시 속엔 신앙으로 산화된 어머니의 신앙심이 그대로 드러나 있음을 볼 수 있었다. 시체라도 건져 장례라도 치렀다면, 장지에라도 가서 만나볼 수 있을 텐데.....

물론 신앙으로 아픔을 견디며 지난 10년간을 잘 견뎌온 희생자의 가족도 있겠지만 그렇지 못한 가족들도 있음엔 분명할 것이다. 그런 가족들이 어떻게 지내왔는지 궁금하다. 그들에게도 하늘이 용기를 주었으면 좋겠다. 뉴욕. 9.11이후 떨어졌던 관광객이 현재는 년 4000만 명이나 찾고 있는 최고의 명소로 다시 자리매김을 하고 있다.

쌍둥이 빌딩이 무너져 내린 그라운드 제로 자리엔 다시 빌딩들이 웅장하게 들어서고 있다. 빈 라덴 사살. 미국, 결코 포기하지 않는 나라임엔 틀림없다. 죽음을 마다한 살신성인의 소방수들. 신앙으로 10년을 견뎌 온 앤드류 아빠와 엄마. 하늘에 있을 앤드류. 아빠와 엄마 품엔 안기지 못하지만 이웃을 위해 더 봉사하고 있는 아빠와 엄마를 보면서 하늘에서 웃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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