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허리케인 아이린 그리고 훈훈한 이웃

2011-09-03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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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중돈(법정 통역사)

8월의 마지막 주말 미국의 동부지역을 휩쓸어간 허리케인 아이린은 많은 사람들에게 엄청난 상처와 흔적을 남겼다. 그나마 다행히도 뉴욕과 뉴저지 지역은 예상과는 달리 그 피해가 예측보다는 많이 줄어들었다. 먼 뉴저지 시골에 한 호수 앞에 집을 가지고 있는 나에게도 아이린은 많은 어려움을 안겨 주었다.
나의 첫 번째 피해는 아이린이 지나가는 날인 일요일이 집안의 귀염둥이 손녀의 백일잔치를 예약해 두었는데 모든 일정을 취소하게 만들었다.

더욱 큰 문제는 정전이었다. 우리는 사흘 동안 정전상태에서 견뎌내야 했다. 우리 집은 모든 것이 전기로 돌아가게 되어있어 정전이 되면 모든 게 스톱이다. 물도 전기 모터로 자가 펌프를 쓰게되어 있어 물이 없어 식수는 말 할 것도 없고 화장실이나 샤워 시설을 사용할 수 없으며 부엌의 취사용 오븐도 전기용이라 무용지물이 되고 말았다.조명은 촛불을 켜고 목욕을 며칠 못하는 것쯤이야 좀 참으면 될 일이지만 며칠을 샌드위치로만 끼니를 때우다 보니 따뜻한 국물이 얼마나 그리웠는지 라면 국물 생각이 간절했다. 궁하던 차 20여 년동안 차고에 있던 옛날 캠핑을 다닐 때 쓰던 야외 용 버너 생각이 언뜻 떠올랐다. 오랜 세월이 지난 버너를 꺼내어 끓인 결과 산해진미를 뺨칠 정도의 맛있는 라면을 쾌재를 부르며 먹을 수 있었다.


뭐니뭐니해도 가장 큰 걱정은 비와 바람이었다. 폭우가 쏟아지고 있었으므로 집 앞의 호수의 물이 불어나 걱정이었고 바람 때문에 이웃한 나무가 넘어질까 가슴 태우며 잠을 설쳤다. 집 앞 호수 가에는 오래 전에 내 손으로 보-트 댁(Deck)을 만들었는데 기둥을 땅에 박지 않고 주춧돌 위에 기둥을 새워 지은 것이지만 20 여 년이 지나는 지금까지 물이 댁을 넘어 문제가 된 일은 없었다. 그러던 것이 이번에는 처음으로 물의 높이가 댁을 넘어 반자 가량이나 불어나
있었다. 마침 호수 한 가운데에 누구 집의 것인지 보트 댁 하나가 물에 떠서 둥둥 떠내려 다니는 것이 보였다. 이때서야 부랴부랴 우리의 댁으로 내려가 보았는데 놀랍게도 지금 막 떠내려 갈 직전의 상황이었다. 급히 로프로 나무에 묶어서 떠내려 가 잃어버릴 직전에 이를 면할 수 있었다.

우리는 이런 비상시를 대비해 아무것도 준비해 두지 못했다. 정전으로 인하여 촛불 밑에서 하염없이 전기가 들어오기만을 무료하게 기다리고 있으려니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바깥소식을 들을 수가 없어 더더욱 안타까웠다. 전화기를 충전할 수도 없었고 배터리로 작동하는 라디오나 TV 등 아무런 기기도 준비하지 않아서 당한 일이었다.열대성 허리케인 Kaiti가 또 북상하고 있다는데 어디로 방향을 잡을 지 알 수 없으나 다시 이곳으로 향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한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더니 이제 각종 배터리를 준비하고 전화기도 스마트 폰으로 바꾸어 이런 비상시에 대비해야겠다고 다짐해 본다. 이번 아이린이 지나가는 동안 외국에 출장 나가 있던 뉴요커가 스마트 폰과 아이팟 컴퓨터 덕분에 이곳의 생생한 현장 소식을 접할 수 있었다며 이런 기기를 개발한 애플 컴퓨터의 스티브 잡스를 칭찬하는 글이 월 스트릿 저널과 뉴스위크 등의 지면을 장식하고 있다.

전기가 나가고 없는 동안 우리는 수세식 화장실을 쓰느라고 집 앞 호수에서 바스켓으로 물을 길어다 쓰고 있었다. 호수건너 먼 거리에 사는 젊은 여인이 이 광경을 보고 안타까웠던지 자기네는 이미 전기가 회복되었으니 자기 집에 와서 샤워를 하고 우리가 필요로 하는 화장실 수세용 물은 자기가 날라다 주겠다고 찾아 왔다. 또 한 번 고마운 이웃의 따뜻한 정에 가슴 뭉클한 감동을 맛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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