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2등이면 어때

2011-08-26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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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병임(논설위원)
결국 케이블 채널 tvN ‘코리아 갓 탤런트’ 결승에서 최성봉(22)은 2등에 머물렀다. 지난 20일 서울에서 열린 ‘파이널 톱 10’의 최종우승은 팝핀 댄스를 선보인 주민정이 차지했다.CNN, CBS, 로이터, 마이니치 등 외신을 비롯 몇 달간 전 세계인의 관심을 불러일으켰던 최성봉은 아쉽게 2위에 그쳤지만 “행복하다. 이 자리까지 온 것만 해도 감사하다”고 말했다.

지난 4월 더벅머리에 체크무늬 셔츠 차림으로 TV에 나와 ‘넬라 판타지아’(Nella Fantasia, 엔리오 모리코네 원작, 영화 미션 중 가브리엘의 오보에 편곡)를 아름다운 목소리로 불러 청중을 놀라게 했던 그, 그의 노래는 살아온 사연과 함께 전세계인을 감동시켰다.3세에 고아원에 맡겨진 뒤 5세에 구타하는 고아원을 뛰쳐나와 10년간 컨테이너 박스, 공중화장실 등에서 자며 클럽에서 껌 팔아 연명해왔다는 최성봉은 여러 번 죽고 싶었지만 그때마다 음악이 유일한 친구가 되었다고 했다.

“나는 환상 속에서 모두들 정직하고 평화롭게 사는 세상을 봅니다. 환상 속에서는 친구처럼 편안하고 따뜻한 바람이 불어옵니다”는 그의 노래는 유튜브 조회 수 1,000만 번을 기록하며 ‘껌팔이 폴포츠’, ‘수전 보일’로 불리며 일약 스타가 되었다. 한 지인이 이메일로 보내준 그의 ‘넬라 판타지아’를 들으면서 가슴이 아팠다. 그의 노래에는 자신을 버린 부모에 대한 원망도, 세상에 대한 서운함도, 그 어느 것도 없었다. 그저 힘들고 고통스런 세상을 위로해 주는 따스한 목소리뿐이었다.


그는 무뚝뚝한 태도에 어눌한 목소리로 차분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데 어떻게 전문적인 교육을 받지 않고 저런 노래를 할 수 있나 했었다.역시나 터져 나온 뉴스는 녹화과정에서 최성봉이 “예술고등학교에 다녔다”고 직접 말한 부분
이 있었는데도 방송사가 이를 삭제, 편집 방송하여 시청자의 오해를 부른 것으로 밝혀졌다.각종 오디션 프로그램이 들불처럼 퍼진 지금, 제작진이 시청자들에게 극적 감동을 주어야 한다는 시청률 경쟁이 빚어낸 아이러니였다. 그래서 이 프로그램은 방통심의위로부터 시청자 사과 및 관계자 징계를 받은 일이 있었다.

그 뉴스를 듣고 앞으로 경선을 치러나갈 최성봉에게 이 일이 마이너스가 되면 어쩌냐는 걱정이 들었다.차라리 방송사는 노래를 가르쳐주고 예술고등학교 입학에 큰 역할을 한 대학생 선생님의 사연을 소개했더라면 좋았을 것이다. 이 각박한 세상에 껌팔이 소년을 진심으로 대하고 세상 살 용기와 길을 열어준 고마운 사람도 있구나, 아직 세상이 살아볼만한 곳이구나 하여 더 감동적이
었을텐데 과욕이 이를 놓친 것이다. 이후 최성봉이 결승까지 올라오나 못 오나 늘 궁금했는데 지난 20일 결승에서 2등을 했다는 뉴스를 듣고 동네 비디오 가게에서 결승 CD를 빌려 보았다.

그는 여전히 조심스럽고 무뚝뚝하지만 노래를 하며 미소를 띄고 있어 안심이 되었다. 갑자기 쏟아진 관심에 대한 혼란과 두려움, 아픈 과거를 딛고 정말로 좋아하는 노래를 하고 있었다.우리가 뉴욕에 산다고 해서 다 잘 사는 것은 아니다. 편부모 슬하에서 장학금 놓치지 않으려고 결사적으로 공부하랴, 식당이나 세차장에서 아르바이트 하랴 심신이 고단한 아이들도 있고 학교에 가봤자 공부를 못 따라 가고 왕따 당하느니 학교 대신 까페나 유흥업소를 전전하면서 시간을 때우는 아이, 마약이나 나쁜 유혹에 쉽게 빠져드는 아이도 있을 것이다. 그들에게 최성봉이 부르는 ‘넬라 판타지아’를 들려주고 싶다.

“나는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존재라 생각했는데 음악이 나를 위로 해줬다. 내 노래를 세상의 많은 사람들에게 들려줄 수 있고 혹시 나처럼 힘들어 하는 사람에게 위로가 될 수 있다니, 어둡기만 한 제 인생에 빛이 생겼다”고 말한 최성봉, 옆에 있으면 어깨를 툭툭 치면서 “2등이면 어때. 참 잘했어, 정말 용하다”고 칭찬해 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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