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에는 팔고 가라’(Sell in May and go away)는 월가의 오래된 금언이다. 실제로 지난 70년간 미국 주가는 5월부터 10월까지는 내려가거나 거의 오르지 않았고 1년간 오른 상승폭의 대부분은 11월에서 4월 사이 발생했다. 주가의 평균 상승을 깨려는 수많은 시스템이 개발됐지만 일관된 효과를 보여주는 것은 이 계절 시스템이 거의 유일하다.
어째서 꽃피고 새가 우는 희망찬 봄이 왔는데 주가는 떨어지는 것인가. 또 어째서 찬바람 불고 을씨년스런 절망의 계절 늦가을에 주가는 오르기 시작하는 것일까. 이에 대한 과학적인 답은 나와 있지 않다. 단지 월가에서 ‘희망’이란 추락을 예고하는 위험한 단어며 ‘절망’은 다가올 반등의 전조라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월가의 이 교훈을 새겨두고 있다 지난 5월 주식을 판 사람은 요즘 편안히 잠을 잘 수 있을 것이다. 5월 정점을 기록했던 미국 주가는 지난주부터 폭락세로 돌변, 불과 1주일 사이 15%를 까먹었다. 올 들어 지난 8개월 동안 올랐던 10%는 모두 날아갔고 거기다 5% 이상 더 떨어진 것이다.
이처럼 주가가 폭락한 원인은 스탠다드&푸어(S&P) 사가 사상 처음 미국 신용등급을 AAA에서 AA+로 강등한데다 이탈리아와 스페인 등 남부 유럽 국가의 연쇄 부도 공포가 되살아났기 때문이다. 오바마 행정부 측은 이번 S&P 사의 결정이 숫자를 잘못 계산한 때문이라고 흥분하고 있으나 신용 평가로 밥을 먹고 사는 사람들이 미국 경제에 엄청난 악영향을 미칠 이번 결정을 계산 착오로 내린 것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미국 국채는 올해로 이미 GDP 총액을 돌파했다. 제2차 대전 이후 처음이다. 지난 주 공화당과 민주당이 가까스로 타협안을 마련해 예산을 삭감해 빚을 줄이는 조건으로 국채 상한선을 올리기는 했지만 이 정도 줄여서는 미국의 재정 안정도를 이룩하는데 부족하다는 것이 많은 투자가들의 판단이다. 그나마 이런 약속이 제대로 지켜질 지도 의문이다.
소셜 시큐리티, 메디케어, 메디케이드 등 사회 복지 제도에 관한 전반적인 수술 없이 천문학적인 재정 적자를 막을 길이 없는데 이 개혁에는 고통이 따른다. 유권자들의 분노를 견디면서 정치인들이 이를 감행할 용기와 지혜가 있는지는 불분명하다.
그러나 저러나 주가 폭락이 시작된 지난 4일은 오바마 대통령의 50회 생일이었다. ‘지천명’의 나이에 다우존스 500 포인트 하락이라는 선물을 받은 오바마의 마음은 씁쓸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다음날 바로 S&P의 미 신용 등급 강등이 이어졌다. 오바마로서는 ‘미국 신용을 강등시킨 첫 대통령’이란 불명예를 얻은 셈이다.
오바마의 고민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투자가들을 안심시킬만한 조치가 없는 한 주가 하락은 계속될 가능성이 높고 그렇게 되면 내년 대선 전 경기 회복은 물 건너갔다고 보면 된다. 주가가 폭락하고 불경기가 심해지는데 재선에 성공한 미국 대통령은 없다.
모든 불황은 호황의 필연적 산물이다. 90년대 말 호경기로 세수가 넘칠 때 이를 국채를 갚는데 썼더라면, 2000년대 초 이자율 조작으로 인위적인 부동산 버블을 일으켜 흥청거리지만 않았더라면 지금의 혹독한 불경기는 면할 수 있었거나 대처하기 한결 쉬웠으리라.
다 지나간 이야기고 문제는 앞으로다. 아직까지 세계 유일의 수퍼파워인 미국은 어마어마한 포텐셜을 가진 나라다. 그러나 이 포텐셜을 살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국가 재정을 바로 잡아야 한다. 지난 수십 년 동안 호황 때는 호황이란 이유로, 불황 때는 불황이란 이유로 나랏돈을 펑펑 써 후손들에게 10조 달러가 넘는 빚을 지우는 행위는 경제적으로는 물론이고 도덕적으로도 용납될 수 없는 일이다.
미국이 흔들리면 미국만이 아니라 전 세계가 흔들린다. 그런 의미에서 미 정치인들이 진 책임은 어느 나라보다 무겁다. 오바마 행정부와 연방 의회는 이번 증시 폭락의 경고를 바로 듣고 장기적인 관점에서 미국의 재정 건전도를 확립하기 위한 특단의 방안을 내놓아야 할 것이다.
민경훈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