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나라가 일어나 전성기를 구가하다 쇠퇴기로 접어드는 것은 역사의 보편적인 패턴이다. 그 나라가 위대하면 위대할수록 어떻게 그렇게 되었는지에 대한 관심도 커지게 마련이다. 그에 관해 숱한 이론과 학설이 나오지만 깊게 따지고 들면 궁극적 대답은 운명이라 말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티베르 강가의 조그만 나라이던 로마가 지중해를 호수로 하는 대제국으로 크게 된 결정적 원인은 숙적 카르타고를 물리쳤기 때문이다. 명장 한니발에 의해 수만 명이 몰살당하는 패배를 여러 차례 맛보고 멸망 일보 직전까지 갔던 로마가 어떻게 카르타고를 이길 수 있었을까. 로마인들이 위기에 굴하지 않고 유능한 지도자를 중심으로 똘똘 뭉쳐 버텨냈기 때문이다. 로마인들은 어떻게 이렇게 뭉쳐 시련을 견뎌낼 수 있었을까. 근면 강건한 전통에다 국가를 위해 스스로를 희생하는 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런 전통과 정신은 어떻게 생겨났는가. 또 어떻게 이런 정신과 전통을 잃어버려 결국 망하게 됐는가. 이렇게 따져 보면 결론은 모른다로 날 수밖에 없다.
로마 이후 세계를 제패했던 영국도 마찬가지다. 영국이 한 때 세계 최강국이 된 것은 산업혁명에 성공했기 때문이다. 영국이 산업혁명에 성공한 것은 증기기관을 제일 먼저 발명했기 때문이다. 증기기관은 어째서 영국에서 처음 발명됐나. 18세기 중반 영국은 유럽 전체에서 가장 문맹률이 낮을 정도로 교육이 널리 보급돼 있었고 법치주의가 확립돼 자기 노력으로 얻은 소득을 왕이나 이웃에게 뺏기지 않을 법적 장치가 마련돼 있었다. 이 때문에 온갖 특허와 발명이 쏟아져 나왔고 그 중 하나가 증기기관이었다. 영국에는 어째서 교육과 법치주의가 발달 돼 있었나. 교회 지도자를 비롯한 선각자들이 교육 보급에 힘썼고 왕권이 약해 시민 사회가 성장할 수 있는 발판이 일찍부터 존재했다. 어째서 영국에만 선각자들이 나오고 왕은 약했나.
따지고 또 따져 보면 나중에 가서는 모든 것이 운명으로 돌아간다. 같은 장소, 같은 민족이 살고 있는 나라가 한 때는 자그마한 섬나라에 불과했다 어느 때는 세계를 정복하기도 하고 또 다른 때는 다시 자그마한 섬나라로 되돌아가기도 한다.
한 때 ‘쓰레기 통 속의 장미꽃’에 비유되면서 조롱 받다가 이제는 세계 제패까지는 아니지만 경이적인 주목을 받는 나라가 있다. 바로 한국이다. 불과 수년 전 골드만삭스가 2050년 한국의 1인당 국민소득이 8만 달러로 미국에 이어
두 번째가 된다는 보고서를 내놨을 때 많은 사람들이 반신반의했었다.
그러나 요즘 돌아가는 것을 보면 이런 전망이 반드시 근거 없는 것은 아니란 생각이 든다. 조지아 애틀랜타에는 ‘기아를 보내준 데 대해 예수께 감사한다’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고 한다. 기아 자동차 공장을 지어 수 만 명에 일자리를 제공한 데 대한 감사의 뜻이다.
지금 현대 기아 차는 미국을 제외하고는 유럽, 아시아, 중국, 남미, 캐나다 등 세계 각지에서 일본 자동차를 이미 제쳤다. 셀폰과 TV 등 전자기기에서는 삼성과 LG가 선두주자로 등장한 지 오래 됐고 조선은 최근 인구 13억의 중국을 누르고 세계 1위 자리를 탈환했다. 새만금을 통해 세계 최대의 간척사업에 성공했고 두바이에 있는 세계 최고의 고층 빌딩도 한국인이 지었다. 한국의 음악과 음식, 드라마 등 소위 한류가 유럽과 일본 등 세계를 휩쓸며 상승 작용을 일으켜 한국의 이미지를 높이고 있다. 불과 60년 전 6.25의 폐허에서 신음하던 한국이 이처럼 일어선 것은 여러 분석이 가능하겠지만 결국은 운명의 힘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1929년 한국이 일제 식민지로 암울한 세월을 보내고 있을 때 타고르는 ‘동방의 등불’이라는 시에서 ‘일찍이 아시아의 황금시기에/ 빛나던 등불의 하나인 코리아/ 그 등불 다시 한 번 켜지는 날에/ 너는 동방의 밝은 빛이 되리라’는 글귀를 남겼다. 타고르의 혜안이 돋보이는 요즘이다.
민 경 훈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