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봉 수필가
따스한 봄날, 아들이 아들을 낳았다. 결혼한 지 5년만이다. 아내는 밤사이 할머니로 변했건만 웃음이 귀에 걸려 있다.며느리 손을 잡고 연신 다독이는 품이 꼭 옛날 장모님 닮았다. 그 동안 이웃집 손님 같던 며느리가 손을 낳고나니 한 식구 같은 깊은 정이 드는 게 인지상정인가 보다.
아기는 신기하게도 제 아비의 두상에 어미의 긴 손가락을 닮았다. 조갑지 같은 손을 쭉 편 채 새록새록 잠들어 있다. 30여년 전, 아기의 아비가 태어났을 땐 주먹을 꽉 쥐고 밤새 보챘었다. 아마도 불안했던 탓이리라.
아내는 처음 미국에 와 추운 미네소타 주, 학생촌 단칸방에 살면서 외로움에 자주 울었었다. 낯선 땅에 와 입덧을 해도 아무도 돌봐주는 이 없는 신세가 몹시 서러웠던 탓이다.
요즘 아내는 하루 종일 음식을 만들어 며느리 산모에게 나른다. 밤길 운전에 서툴러 엄두도 못 내던 두어 시간 거리를 쌩쌩 총알택시처럼 다닌다. 아들과 며느리가 밥을 먹는 동안 손자 얼굴을 들여다보며 찬송도 불러주고, 기도도 해주는 할미노릇이 참 행복하다고 한다.
그런데 어느 날 아내가 좀 시무룩해서 돌아왔다. 아들네가 다음 달 직장을 따라 뉴욕으로 가게 된 것. 그래서 아들만 먼저가고 며느리와 아기는 얼마간 할미 집에 있다가 가면 좋겠다는 제의를 썩 내켜하지 않더란 것이다. 젖먹이가 장시간 여행하는 게 걱정된다고 겉으로 내세웠지만, 얼마간이라도 손자와 정을 나누고 싶은 속마음을 몰라주는 아들부부에게 섭섭한 눈치였다.
아내는 느닷없이 ‘엄마를 부탁해’란 소설이야기를 꺼냈다. 자식들 입에 밥 들어가는 재미에 자기 입에 음식 들어가는 것이 아까웠던 부모와 신교육을 받은 자식세대와의 괴리가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이었다. 내 자식도 똑같다고 서운해 했다.
그런데 LA 계신 팔순 어머니가 전화를 주셨다. 증손자가 태어나면 달려오려고 서둘러하신 무릎수술의 후유증이 심해 아직도 올라오지 못하고 계신다. 어머니는 증손자의 이메일 사진으로 만족해 오시던 터였다.
아내가 대충 근황을 전하며 섭섭함을 내비치자 어머닌 웃으며 한마디 하신다. “너희들도 옛날에 똑같았느니라. 결혼하고 나서 한국에 살던 내게 첫손자를 데려온 게 출생 몇년 후였던 것 기억하니? 아무 소리 말고 애들 원하는 대로 보내 주거라."
사흘 뒤에 어머니로 부터 편지 한장을 받았다. 손자와 손자 며느리에게 쓴 친필 편지였다. “60여 년전, 혈혈단신 이북에서 피난 온 내게 증손자를 낳아 가족의 대를 잇게해 준 너희들에게 감사한다. 자식 속에 부모가 있다. 자식이 행복하게 자라려면 자식들 마음 속에 있는 부모가 건강해야 한다. 너희들에게 주려고 오려둔 글을 보낸다. 어느 사회학 교수가 쓴 ‘부모 5계명’이란 글이다. 내가 살아보니 모두 옳은 말이다.
첫째, 남의 자식과 비교하지 말라, 그래야 자식도 남의 부모와 비교하지 않는다. 둘째, 자녀와 매일 소통하라. 전화가 안되면 기도로 통화하라 셋째, 자식을 무조건 믿어라, 속아도 믿어주면 결국 돌아온다. 넷째, 자식이 두발로 설 때까지 참고 기다려라, 자식을 살리는 유일한 길이다. 다섯째, 자식을 위해 희생할 생각은 버려라, 대신 부부간에 행복해라, 그래야 자식이 닮는다."
어머니는 편지와 함께 꼬깃꼬깃 소액권 수표 한장을 넣으셨다. “증손자 대학입학 종자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