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대공황과 대불황

2011-07-05 (화)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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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9년 미 주가 폭락과 함께 시작된 대공황은 사상 최악의 경제적 참사였다.

주가가 바닥까지 추락하는 데만 장장 4년이 걸렸고 1929년 수준을 회복하는 데는 24년이 걸렸다. 그동안 9,000개의 은행이 망하고 실업률은 25%로 치솟았다.

미국뿐만이 아니다. 유럽에 미친 영향은 이보다 크면 크지 결코 작지 않다. 대공황 덕분에 히틀러와 무솔리니가 정권을 잡았고 그 결과 사상 최악의 정치 군사적 참사인 제2차 세계 대전이 벌어졌다. 인류에게 대공황-2차 대전보다 더 큰 희생을 강요한 재난은 없다.


신기한 것은 이런 어마어마한 영향을 미친 사건에 대해 아직까지도 왜 일어났는지를 놓고 정설이 없다는 것이다. 자본주의 체제 하에서, 어쩌면 인간이 사는 사회에서 호황-불황 사이클은 불가피하다. 그런데 어째서 이때만 이런 재앙이 벌어졌을까.

대공황의 원인은 투기 자본과 ‘시장의 실패’라는 것이 한동안 통설이었다. 대공황이 월가에서 시작됐고 자본주의가 가장 발달한 미국에서 일어났다는 사실로 미뤄 볼 때 이런 진단은 상식으로 받아들여졌다. 이것이 많은 진보적 지식인들을 공산주의로 기울게 하고 소련을 찬미하게 한 주원인이 됐다. 시장이 실패했을 때는 정부가 나서야 한다는 케인즈 학설이 주목을 끈 것도 이 때다.

그러나 이런 분석에 의문을 제기한 학자들도 있다. 미국이 자본주의를 해 온지 100여년이 넘었는데 전에는 없던 일이 왜 그 때 일어났느냐는 것이다. 이들은 대공황의 원인을 ‘정부의 실패’, 좀 더 구체적으로 연방 은행의 실패로 본다. 미국의 중앙은행격인 연방 준비제도 이사회(FRB)가 생긴 것은 1913년이다. FRB가 탄생한 것은 금리와 통화량을 적당히 조절해 심한 불황이 오는 것을 막자는 것이었는데 오히려 이것이 역효과를 가져왔다는 것이다.

FRB가 생긴 후 처음으로 1920년 불황이 찾아왔다. FRB는 본래 목적에 충실하기 위해 돈을 풀기 시작했다. 이중 일부는 기업을 살리고 소비를 진작하는데 사용됐지만 일부는 주식과 부동산으로 흘러들어 투기 자본으로 변했다. 이번 불황도 하이텍 버블 붕괴로 찾아온 불황을 치료하기 위해 돈을 풀다 더 큰 부동산 버블을 만나 일어났다는 점에서 대공황 때와 닮은 점이 많다.

장기간 주가가 폭등하자 사람들은 돈을 빌려서 주식 투자에 뛰어들었고 오르다 오르다 정점을 친 후 주가가 폭락하자 패닉이 발생했다. 빚진 돈을 갚기 위해 사람들이 은행으로 몰려들자 돈이 마른 은행이 문을 닫기 시작했고 기업들은 돈줄이 막혔다. 기업의 연쇄 도산과 대량실업이 발생하고 그 때문에 물건은 더 안 팔리는 악순환이 시작된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뒤늦게 FRB는 투기를 잡겠다고 통화량을 줄여 돈을 더 마르게 했다.

프리드먼을 비롯한 통화주의자들과 하이에크를 필두로 한 오스트리아 학파 경제학자들은 이 때 FRB가 돈만 풍부히 풀었어도 대공황은 피할 수 있었다고 주장한다. 이들 학파의 충실한 추종자가 현 FRB 의장인 벤 버냉키다. 그는 이들 이론에 의거, 연방 채권 매입 형식으로 1조2,000억 달러라는 천문학적인 돈을 풀었다. 거기다 경기가 나쁠 때는 정부가 재정 적자를 감수하고서라도 돈을 풀어야 한다는 케인즈 설을 신봉하고 있는 오바마 행정부는 7,000억 달러를 쏟아 부었다.

서로 다른 대공황 분석과 해법을 내놓은 양대 학파의 처방을 동시에 썼음에도 아직 미국 경제는 겨우 숨만 쉬고 있는 상태다. 일부에서는 그 많은 돈을 퍼부었는데 고작 이 정도냐고 볼 멘 소리를 하지만 만약 정부가 아무 것도 하지 않고 방치했더라면 대공황 이상의 파국이 왔으리란 반론도 있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어떤 불황도 어떤 호황도 반드시 끝난다는 점이다. 대공황 때도 불황이 시작된 지 4년째부터는 조금씩 나아지기 시작했다. 올해는 2007년부터 시작된 대불황이 4년째 되는 해다. 지루하고 고통스런 이번 불황도 언젠가는 끝나리라는 믿음과 희망을 갖고 하루하루를 살아가자.


민경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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