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청소하는 아침나절

2011-06-25 (토)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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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말 에세이

요즈음 일터로 향하면서 바라보는 하늘은 항상 흐리다. 시계가 뿌옇다. 팔과 얼굴에 닿는 공기의 감촉도 추운 것도 아니고 더운 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시원한 것도 아니다. 뭐라 딱 꼬집어 말할 수 없는 불확실한 느낌이다.

요즘 세상을 사는 사람들의 마음과도 같다. 가게로 나와도 부푼 기대가 없으니 즐겁지가 않다.

책방에서 손님이 “요즈음 오전 일찍 책을 사러오면 아주머니를 볼 수가 없었어요. 어디 다녀 오셨어요?”라며 인사를 건네 왔다.
“가게일이 좀 뜸하니 아침에 집에서 열심히 청소하고 조금 늦게 출근 한답니다.”


그리고는 덧붙였다.

“예전에는 돈 번다는 핑계로 집을 쓰레기통처럼 해 두어도 변명이 되었지만 요즘은 돈도 못 버는 데 살고 있는 주변이라도 깨끗하게 하게 해야지 하는 마음으로 집과 가게에서 청소를 하며 산답니다.”

손님이 깔깔 웃으며 정말 좋은 아이디어라고 말한다.

한창 비즈니스가 바쁠 때는 몸은 무척 고단했지만 자신감(?)은 충만했었다. 불황에 접어들면서 몸은 편안하여 지내기가 좋지만 존재감은 위축되어 기분이 썩 좋지는 않다.

이럴 때 돈이 전혀 들지 않으면서 기분이 좋아지는 것은 청소하고 주변을 조금씩 정돈하는 것이다. 청소를 취미로 삼았던 경험이 있다. 같은 물건이라도 균형미 있게 배치하고 방향을 달리하면 새로운 느낌이 들면서 기분이 좋아진다. 잘 조화된 가구 배치와 깨끗이 정돈된 실내가 인테리어의 전부라는 나름의 견해를 가지고 있다.

한국에서 고향을 떠나 서울에서 유학하던 중 살던 아파트를 비워줄 처지가 되었다. 두 여동생과 함께 단칸 셋방에 함께 살며 직장을 다녀야 했다. 가난에 지지 않고 청빈의 삶을 즐기리라 다짐했다. 좁은 단칸 셋방을 요리조리 공간 활용 잘 하도록 정돈했다.

미대에 다니던 동생이 그린 그림을 사방 벽에 테이프로 죽 걸었다. 엎드려 책을 보다 지치면 뒤집어 누워 천장 아래 붙여진 그림을 감상하는 재미에 푹 빠졌었다. 걸어둔 그림은 동생이 새로 그림을 완성할 때마다 바뀌었다.

식품비도 아끼며 살아야 하던 처지라 백화점이나 영화관 근처는 얼씬도 못했다. 방 안에서 책과 함께 뒹굴며 ‘청빈의 즐거움’을 누리는 중이라고 우기는 배짱으로 버텼다. 책읽기와 그림감상은 가난이 가져다 준, 이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나의 취미이다. 내면에 잔잔하고 은근한 기쁨을 주는 평생의 낙이다.


세상은 우리를 소비문화에 길들여 놓고서 돈을 쓰지 않으면 아무런 존재감이 없는 것처럼 호도한다. 실상 돈을 들이지 않고도 누릴 수 있는 즐거움과 행복을 헤아려 본다면 수백 가지 이상 될 것이다.

변덕을 부리고 있는 세상이 결코 인간의 편이 아님을 절감한다. 각자의 능력이 왠지 초라하게 느껴져 의기소침해지는 날들이다. 고개를 세차게 흔든다. 신기루 같은 허황된 삶의 모습에 결코 짓눌려서는 안 된다고 다짐한다. 마음속에 배짱을 두둑하게 집어넣고 청빈의 삶을 즐기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나는 오늘도 집과 가게에서 열심히 청소를 한다.


윤선옥
동아서적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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