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불황 극복의 묘약

2011-06-01 (수)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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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회복이 더딘 탓이다. 사람들이 음악으로, 춤으로 삶의 위안을 받길 원한다. 서바이벌 쇼가 인기를 끄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스타와 함께 춤을(Dancing with the Stars)’의 댄싱 챔피언 하인스 워드에게 터질 듯 박수를 보내고 ‘나는 가수다’에서 ‘여러분’을 열창하는 임재범을 보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린다.

하인스 워드는 댄스를 마친 뒤 방청석으로 달려가 어머니에게 키스를 했고, 임재범은 고통의 울음을 삼키며 무대의 중간에서 관객을 향해 무릎을 꿇었다. 각박한 현실 속에서 함께 살아가는 가족과 감동을 나누고, 눈으로 음악을 보았던 대중에게 귀로 음악을 들으며 마음을 나누자는 무언의 약속이다.

감정의 정화, 카타르시스의 갈망. 울고 싶어도 울 수 없고, 웃을 일 없는 현실을 이어가는 사람들의 공통된 소망이 아닐까. 호황일 때는 공포영화의 인기가 높았다. 사람들이 공포의 기분을 토해내면서 카타르시스를 느꼈다.


그러나 침체기에 접어들면서 공포보다는 애련이나 마음속에 솟아오른 슬픔을 배설해 마음의 정화를 원하는 경향이 짙어졌다. 울적한 감정을 쏟아 버림으로써 정신을 정서의 압박으로부터 해방시키고 희열을 느끼는 것. 문학에서 말하는 효용론이다. 문학작품을 통해 무의식에 있던 분노, 억압, 갈등을 의식해 감정의 정화를 꽤하는 효과. 바로 ‘비극’을 봄으로써 마음에 쌓인 울적한 감정을 쏟아내는 진정한 카타르시스의 경험이다.

우리는 고민이 있거나 힘든 일이 생기면 가까운 사람을 만나 하소연을 하거나 대화를 나눈다. 친구에게 하소연을 할 때에는 굳이 상대방이 그 문제를 해결해주길 바라는 것은 아니다. 단지 말을 내뱉음으로써 쌓인 감정을 배설하고 위안을 얻는 것이다.

허나 세월이 흐르면서 사람들은 약한 면을 감추기 시작한다. 부정적인 감정들을 꾹꾹 눌러 담기 시작한다. 곪아서 병이 되어버릴지언정 결코 약한 인간임을 드러내기 싫어한다. 특히 중장년층의 감정 억압은 심각하다.

그러한 감정들을 배설할 수 있게 해주는 좋은 도구가 음악이다. 3~4분의 짧은 시간 동안 응집된 카타르시스를 쏟아내는 방식으로 감동을 준다.

올 여름 음악적 카타르시스를 제대로 느껴보자. 메마른 감정에 불을 지펴 눈물을 쏟아내며 감정의 정화를 꾀해보자. 모두에게 위안이 필요한 시대이다. 개개인이 감정적으로 건강해야 서로에게 위안도 줄 수 있을 것이다.


하은선
사회부 부장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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