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생명의 나무 (The Tree of Life)

2011-05-27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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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흥진의 영화 이야기

생명의 나무 (The Tree of Life)

브라이언(브래드 핏)이 자신의 갓난 아기의 발을 경탄의 눈으로 바라보고 있다.

★★★½ (5개 만점)

세상과 인간 탐구한 시 같은 영화

지난 22일 폐막된 칸 영화제서 그랑 프리를 받았다. 철저한 은둔자인 미국 감독 테렌스 맬릭(각본 겸·67)의 세상과 자연과 인간 창조의 신비와 아름다움과 진리를 탐구한 영적이요 종교적이며 심오한 교향시로 선험적 체험을 하면서 아울러 과장된 허식성을 동시에 느끼게 만드는 작품이다.


이 영화는 40여년 영화 경력의 맬릭의 5번째 영화로 그는 지난 1978년에 리처드 기어가 나온 역시 얘기보다 영상미가 뛰어난 ‘천국의 날들’(Days of Heaven)로 칸에서 감독상을 받았다.

명상과 구도하는 인내심을 가지고 봐야 되는데 상영시간 138분 동안 얘기는 생략하고 단편적이며 종잡을 수 없듯이 한없이 느리게 서술하는 반면 시각적 스타일과 아름다움에 집착하면서 유영하는 카메라(에마누엘 루베츠키)가 사물의 미세한 부분들을 현미경으로 잡아내듯 몰두, 한편의 긴 초현실적이요 서정적 영상 추상시를 보는 느낌이다. 그의 영상처리가 마치 세상을 만든 신의 손길처럼 느껴진다.

맬릭의 카메라와 함께 또 하나 인상적인 것이 클래시컬 음악을 많이 사용하는 그의 영화음악(알렉상드르 뒤플라). 여기서도 그는 고레츠키의 음악을 비롯해 관현악곡과 합창곡을 효과적으로 쓰고 있다. 영화를 보면서 그 내용이 감독의 경험을 얘기하는 것이나 아닐까 하고 느껴질 만큼 개인적이요 사적인 분위기를 지니고 있다. 아트하우스 팬들 용으로 그들마저도 엇갈린 반응을 보일 작품인데 과연 영화와 연결고리를 가질 수 있느냐 없느냐 하는 문제는 전적으로 보는 사람의 관점에 달렸다.

속삭이는 듯한 내레이션에 의해 과거와 현재가 오락가락하면서 진행되는 영화의 중심 플롯은 1950년대 텍사스의 한 작은 도시에 사는 중산층 브라이언씨(브래드 핏이 입을 꽉 다물고 엄격한 연기를 인상적으로 한다) 가족의 얘기. 브라이언은 장남 잭(소년배우 헌터 맥크랙큰의 민감한 연기가 훌륭하다)을 비롯해 세 아들을 사랑하지만 폭군적으로 엄격해 잭은 성장하면서 심한 통증을 앓는다.

반면 브라이언의 부인(제시카 채스테인이 영적인 영기를 한다)은 천사와 같은 여인으로 자식들을 사랑과 자비와 온유로 보호하고 키운다. 브라이언 가족 얘기는 주로 잭의 눈으로 관찰되고 묘사된다. 잭은 커서 휴스턴의 고층빌딩에 있는 회사의 고급 간부로 나오는데 이 역은 션 펜이 맡고 있다. 성장한 잭의 셀폰 통화에서 그와 아버지의 관계가 여전히 대립적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영화에서 실로 감동적인 장면은 20여분 간 진행되는 세상창조 장면. 스탠리 큐블릭의 ‘2001: 스페이스 오딧세이’를 연상케 하는 장관이다. 성운의 팽창과 별들의 폭발과 해저 미생물의 생성 그리고 화산 폭발과 공룡들의 희롱 등이 보는 사람의 마음을 숙연하게 만든다.

사실 영화는 별 얘기가 없다. 맬릭은 우주의 생성과 신비를 인간의 그것과 비교하면서 그 의미를 찾아보려고 애쓰고 있는 것 같다. 그는 영상을 기도처럼 쓰는 구도자인데 성장한 펜이 나오는 저승과 이승 사이의 세계를 연상케 하는 마지막 장면이 거의 눈물이 날 정도로 영적이다. 영화가 너무나 사적이요 추상적이어서 다소 거부감 같은 기분을 느끼다가도 영화 후 곰곰 생각해 보면 감독의 진지함에 감복을 하게 된다.

PG-13. Fox Searchlight. 아크라이트(323-464-4226), 랜드마크(310-281-8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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