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

2011-04-29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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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병임(논설위원)
일본이 조선총독부를 통해 가져간 조선왕실의궤가 곧 반환된다. 이 조선왕실의궤는 왕실의 결혼, 장례식, 연회 등 주요의식과 행사 준비과정 등을 상세하게 기록한 것으로 반환 소식에 많은 국민들이 반겨하고 있다.조선시대 궁중과 서민들의 생활이 요즘 관심사가 되고 있는데 작년에는 경술국치 100년을 맞아
각 TV마다 특집 프로를 진행, 고종황제의 비자금과 밀서 등을 추적했다.

예나 지금이나 한국TV에는 늘 삼국시대와 고려, 조선시대에 대한 사극이 한두 개 정도는 방영되고 있다. 특히 조선시대는 태조부터 시작해 태종, 세종, 세조, 숙종, 단군, 영조, 정조, 철종 등 거의 모든 왕을 소재로 다루었고 장희빈, 인목대비, 폐비 윤씨 등 왕비 열전뿐만 아니라 허준, 대장금, 김홍도 등 백성들도 단골 소재가 되고 있다.2006년에는 ‘대한민국이 입헌군주제’라는 가상아래 드라마 ‘궁’이, 최근에는 대한민국의 황실 재건을 다룬 ‘마이 프린세스’ 등 현대극이 나오기도 했다.

더불어 조선왕조 궁중음식에 대한 관심은 지대해 ‘임금님 수라상’, ‘왕비의 다과상’ 등 궁중요리강습을 받으러 다니는 주부들도 많다. 궁중복식도 유행되어 결혼과 환갑, 돌잔치에 황실의 혼례복이나 당의를 본딴 자수, 금박, 화려한 한복을 입고있다.한국민들 모두 조선왕조에 대한 관심은 뜨거우면서 정작 그 피를 이어받은 왕손들에 대해서는 무관심 하다 못해 ‘100년 전에 조선왕조는 사라졌잖아’하고 냉정하게 말한다. 그러나 집과 음식, 복장 등이 아무리 중하다 한들 사람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다.


얼마 전 의친왕의 딸 이해경씨를 인터뷰 하면서 무너진 왕실의 후손들은 어찌 살았는지에 대해 살펴볼 기회가 있었다.고종의 아들 의친왕은 13남 9녀를 남겼지만 히로시마 원폭사망, 사고사, 병사로 일찍 죽었거나 포장마차, 구멍가게, 수위, 능 관리인으로 살았다. 지금 생존한 이는 몇 명 안되며 월세방에 살
거나 해외에서 아직도 유랑생활을 하고 있다. 궁에서 물러나 하루 세 끼를 걱정해야 했던 그들이 살던 궁은 입장료를 받고 국민들에게 개방되었다.

1989년 창덕궁 낙선재에 살고 있던 이방자여사와 덕혜옹주가 죽자 모든 것이 종료되었고 낙선재는 더 이상 사람이 살 수 없게 막아버렸다. 집은 원래 사람의 온기가 있어야 오래 보존되고 길이 드는데 차가운 냉기만 감돌며 마지막 황실의 비애를 알리고 있다.대한민국 건국 당시 왕족은 조선이 국권을 상실한 책임을 물어 서훈대상에서 제외시켰다. 독립운동 한 증거가 드러나도 왕족은 국가 유공자에 해당되지 않는다. 명예회복의 길도 아직 멀다. 위정자들은 뭐가 그리 겁이 났을까?, 내쳐진 황손들이 혹시나 왕권을 달라고 할까봐 겁나서 일까.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라는 법이 있으니 그렇게까지 노심초사할 필요는 없었을 텐데.

지난 2005년 영친왕 아들 이구가 후사 없이 죽음으로써 대한제국 왕실의 적통은 끊어졌다. 의친왕의 10남 이충길의 장남 이원이 이구의 봉사손으로 제사를 모시는 데 이원 역시 창덕궁에 들어가려면 입장료를 내야 한다. 황사손 이원이 치르는 조선왕릉 40기 제사와 모든 황실 행사는 우리의 무형유산 중 하나이다. 황실 관련 문화 콘텐츠를 개발하고 해외사절이나 해외문화원에 궁중문화 알리기, 일본정부 소장의 또다른 문화재와 민간으로 흘러간 유물 되찾기 등에 민간문화대사로서 이들 왕손이 할 일들이 있지 않을까?

최근 문화재청은 창경궁을 봄·가을에 야간 개방하여 고궁의 밤 즐기기 프로그램을 내놓고 있는데 그 외 경복궁, 창덕궁, 덕수궁, 종묘 등 서울에서 가장 아름다운 공간에 숨을 불어 넣어주었으면 한다. 영국의 윌리엄 왕자와 케이트 미들턴의 결혼식에 미국 대통령 버락 오바마가 군주가 아니라 하여 초청받지 못했다. 그것이 시대착오다 하기 전에 잠시, 깊은 역사와 전통은 하루아침에 되는
것이 아니구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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