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백악관 이야기

2011-01-24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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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효섭 (아동문학가/목사)

고 노무현 대통령이 “대통령 못해 먹겠다”고 실언해서 구설수에 올랐던 일이 있다. 대통령 자리가 얼마나 힘들었으면 그런 말이 튀어나오기까지 했을까? 4천만의 우두머리인 한국 대통령이 그토록 힘들다면 2억 5000만의 미국인과 세계를 주름잡는 미국 대통령 하기는 정말 힘들 것 같다. 역대 백악관 주인공들의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들을 인터넷의 역사 사이트에서 살펴본다.

미국 대통령 중 가장 아이를 많이 낳은 사람이 존 타일러(John Tyler)대통령으로서 자녀 15명을 낳았다. 공사다망한 중에도 매우 가정적이고 정력적인 대통령이었다. 대통령 부인의 고생이 대단했을 것이다. 악기를 가장 많이 다룰 수 있었던 대통령은 리처드 닉슨(Richard Nixon)으로 피아노, 클라리넷, 아코디언, 바이얼린, 섹소폰을 다 연주할 수 있는 다재다능한 음악가였다. 워
터게이트 사건으로 실족했지만 음악 천재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동물 사랑의 으뜸은 칼빈 쿨릿지(Calvin Coolidge) 대통령으로 애완동물 열다섯 마리를 키웠다. 백악관이 동물원 같았을 것이다. 백악관에 살았으니 팔자 좋은 동물들이다. 대통령이 되고 4년 동안에 가장 뚱뚱해진 사람은 윌리엄 타프트(William Taft) 대통령으로 백악관을 떠날 때 체중 50파운드가 늘어 있었다. 노총각으로 끝내 결혼을 해보지 않은 유일한 독신 대통령은 제임스
부커넌(James Buchanan) 이었다.


문명의 이기(利器)를 처음 사용하여 과학의 혜택을 본 대통령들도 있다. 사진을 처음 찍힌 대통령이 존 아담스(John Quincy Adams)이고, 전화를 처음 쓴 대통령이 러더포드 헤이즈(Rutherford B. Hayes)이다. 백악관에 가장 오래 살았던 대통령은 프랭클린 루즈벨트(Franklin Roosevelt)인데 네 번째 임기
를 시작할 무렵 사망하였다. 가장 짧게 대통령직에 있었던 사람은 윌리엄 해리슨(William Harrison) 대통령으로 겨우 취임 32일 만에 폐렴으로 죽었다.
앤드류 잭슨(Andrew Jackson) 대통령은 찰즈 디킨슨이 쏜 총에 맞아 총알을 가슴 속에 둔 채 40년을 더 살았다. 매우 운이 좋은 사람이다. 그 당시 총알을 빼낼 수술 기술이 없었던 것이다.

44명의 대통령 중 이혼한 사람은 단 한 사람 로널드 레이건(Ronald Reagan) 대통령이다. 백악관에서 영어를 쓰지 않은 대통령이 있다. 마르틴 뷰렌(Martin Van Buren)으로 네덜란드 말을 사용하였다. 한국 사람이 미국 대통령이 되어도 집에서는 한국어를 쓸 것 같다. 엉뚱하게도 백악관에 살지 않겠다고 고집을 부린 대통령도 있다. 그로버 클리블랜드(Grover Cleveland)로서 “백악관은 사람 살 곳이 못된다.”고 선언하고 워싱턴 시내에 셋집을 얻어 살았다. 대통령은 반드시 백악관에 살아야 한다는 법이 없기 때문에 제재할 수는 없었다. 백악관 생활은 사생활이 침해되는 경우가 많아 거부한 것이다.

지미 카터(James Carter) 대통령은 백악관에 입성한 첫 직원회의에서 이렇게 선언하였다. “백악관 직원 여러분, 가정생활에 충실하십시오. 안정되고 건강한 가정생활을 하는 사람이 나 대통령에게도, 이 나라에도 필요한 사람입니다” 나는 거듭난 크리스천이다(born-again Christian)고 담대하게 공언한 사람다운 취임사였다. 테레사 수녀가 노벨 평화상을 받은 날 기자가 물었다. “수녀님, 세계 평화를 위하여 가장 긴급하게 해야 할 일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테레사 수녀가 웃으며 대답하였다. “질문하신 기자께서 오늘 되도록 빨리 집에 돌아가 가족들을 기쁘게 해주십시오. 세계 평화는 가정으로부터 시작됩니다.”

자동차 왕 헨리 포드씨도 직원들에게 비슷한 말을 하였다. “자기 가정을 행복한 동산으로 만들지 못하는 사람이 좋은 자동차를 만들 수는 없습니다.” 시인 괴테도 말한다. “왕이든 농부든 자기 가정에서 행복을 누리는 사람이 최고로 행복한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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