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투명지붕 열차 타고 보는 파노라믹 절경

2010-10-15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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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데날리 국립공원

임지나 <수필가> - 알래스카를 가다

오늘은 데날리(Denali) 국립공원으로 기차 여행을 떠나기로 한 날이다. 데날리란 말은 원주민 말로 “아주 높은 것”(The High One) 이란 뜻이다.

데날리 여행은 알라스카 여행 스케줄울 잡을 때 이미 예약했던 것으로 2박 3일이 잡혀있다. 창문을 열고 내다보니 구름이 시커멓게 낀 하늘은 툭 치기만 해도 한바탕 쏟아 질 것 같다. 아무래도 쌀쌀한 날씨가 될 것 같다.


호텔 로비에는 기차 여행을 떠날 사람들이 여기저기 모여 앉아 셔틀 버스를 기다리고 있다. 기차는 8시30분에 데날리로 떠난다고 했다. 7시간이나 기차를 탄다는 말에 캘리포니아에서 본 매트로 링크나 독일의 프랑크푸르트를 갔을 때 타본 기차를 상상했다.

투명지붕 열차 타고 보는 파노라믹 절경

앵커리지 기차역은 우리 호텔에서 멀지 않는 곳에 있었다. 알래스카 레일 로드(Alaska Rail Road)는 클래스 2 레일로드다. 그것은 알래스카의 남쪽 끝인 수워드 에서 시작해 위티어(Whittier)로 연결돼 페어뱅크(Fairbank)까지 470마일, 그리고 아일슨 공군기지 (Eilson Air Force Base)와 포트 와인라이트 (Fort Wainwright)까지를 합치면 500 마일을 달린다.

데날리는 페어뱅크까지 가는 도중에 있는 정거장이다. 아무래도 비가 올 것 같다.

깊고 높은 산으로 간다는 말에 기차역 안에 있는 선물 센터에서 두꺼운 스왯 재킷과 조끼를 하나 샀다. 스키를 타러가는 사람들처럼 무장한 그들을 보고 웬만한 추위쯤 잘 견디는 나도 내 옷이 좀 걱정이 됐다.

길게 늘어진 꽁무니에 줄을 서 기다리자 8시쯤 승객들을 태우기 시작한다. 그들을 다 태운 뒤 몇몇 남은 승객들과 우리 일행은 밖으로 나와 버스를 타라고 했다. 아니? 기차여행이 아니라 버스여행인가? 짧은 순간이지만 뭔가 잘못 됐다는 생각이 든다. 왠지 차별을 받는 것 같아 우울하고 풀이 죽는다.

뒤처진 우리들을 버스에 태우고 운전수가 인원 점검을 하더니 출발을 했다. 기차는 아직도 긴 숨을 고르며 떠날 생각이 없는 데 우리는 버스에 태워져 어디로 가는 걸까. 우리 인생이 어디로 흘러가는지 모르듯 이 버스를 타고 어디로 가는지 모른 채 침울 하기만 하다.

꾸무럭한 날씨는 내 맘을 한결 더 우울하게 한다. 비가 올 것 같다. 비와 바람은 알래스카에서 빼 놀 수 없는 하루의 일기 변화다. 버스는 3-4 분 정도 내려오더니 기차의 마지막 칸 앞에 바짝 갖다 댄다. 안내원이 모두 내려서 기차에 타라고 한다.


좌석은 티켓에 지정된 자리를 찾아 앉을 것도 상기시킨다. 나와 함께 버스에 탔던 일행들의 얼굴에 화사한 웃음꽃이 핀다. 손님들의 불편을 덜어 주기위해 그 짧은 거리를 버스를 이용한 것이다. 그들의 말없는 배려에 가슴이 찡하는 감동을 느꼈다.

인간은 서로 말하지 않아도 같은 상황에서는 곧잘 서로 공감한다. 그 몇 분 동안에 그들도 나와 같은 감정 변화를 느꼈음이 틀림없다.

기차 안은 티끌 하나 없이 깨끗하고 아늑하다. 곧 승무원이 주의 사항과 서비스를 설명했다. 기차 지붕은 투명 유리로 구름과 하늘이 온통 쏟아져 들어올 듯하다. 전봇대보다 더 큰 나무들이 차가운 바람이 싫다고 도리질을 해댄다. 유리창으로 내다보이는 푸른 들판은 한없이 뻗어 하늘 끝을 붙잡고 매달린다.

기차는 ‘홀 랜드 아메리카 투어’(Holland America Tour)로 “맥킨리 익스풀로러” (McKinley Explorer)라 부르는 돔 차(Dome Car)다.

비행기보다 더 넓고 편한 좌석이 내가 귀빈이 된 것 같아 하늘을 나는 기분이다. ‘홀랜드 아메리카 투어’ 회사는 현재 23개의 돔 카를 운영하고 있으며 또 세계에서 가장 큰 기차 회사라고 한다.

앵커리지와 페어뱅크 사이에 열네 대를 투입하고 있다. 높이가 18피트, 길이가 89피트 그리고 넓이가 10피트가 넘는다. 88명의 관객을 태울 수 있고 경치를 내다볼 수 있는 창의 높이가 9피트에서 10피트라고 한다. 차나 버스로는 도저히 볼 수 없는 높이가 300피트나 되는 폭풍의 다리 ‘허리케인 걸치’ (Hurricane Gulch), 데날리 국립공원을 거쳐 페어뱅크까지 가는 도중의 파노라믹 한 알라스카의 자연을 한 눈에 즐길 수 있다.

허리케인 걸치는 다리 밑 300 피트 아래 가파르게 흐르는 물살과 주위에서 몰려 일어나는 세찬 바람으로 보기만 해도 빈혈이 일어난다는 곳이다.


폭풍의 다리 지나 산맥과 절벽 ‘아득’
순식간에 거센 비바람… 날씨 변화무쌍


페어뱅크는 알래스카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고 한 때는 금광 바람이 세게 몰아쳤던 곳이다. 인구는 3만1,000명 정도다. 오일과 개스, 탄광 등으로 알래스카 경제의 한 축을 이루고 있다. 또 알래스카 대학이 있고 지금은 오히려 관광지로 각광을 받고 있다.

특히 ‘오로라’(북극의 빛)는 오직 페어뱅크에서 겨울철에 8월과 이듬해 4월 사이에 볼 수 있는 신비한 빛 (Northern Light)이다. 호텔에서는 이 빛이 나타날 때 알람을 울려 손님들을 모두 깨운다고 한다. 썰매 개들이 끄는 마차를 타고 혹은 말을 타고 하얀 눈 위에서 오로라를 보는 감동은 참으로 경이로운 것이라고 한다. 내가 갔을 때는 여름이어서 나는 그것을 오직 영화로 밖에 볼 수 없었다.

기차가 이곳을 통과할 때, 흰 깃발을 흔들어 기차를 세울 수 있는 조그만 역이 몇 군데 있다. 이것은 오직 알래스카에서 만 가능한 일이라고 한다. 옛날에 차량이나 마차가 들어올 수 없었던 그 시절에 승객들을 태우던 그 풍습을 지금도 지켜 오고 있다고. 알래스카를 가면 한번쯤 이곳에서 깃발을 흔들어 기차를 타 보는 것도 추억에 남을 일이다.

조금 더 올라가니 ‘켄트웰’(Cantwell) 이란 조그만 시가 나온다. 존 크라카우어의 유명 소설 “자연 속으로”(Into The Wild) 란 영화를 촬영한 곳이다. 2007년에 배우 숀 펜이 감독하고 에마일 허쉬가 주연했던 영화다.

애틀랜타에 있는 에모리 대학을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 엘리트, 크리스 존슨 맥켄들리스의 비극적이고 드라마틱한 24살의 삶을 그린 실화다. 그 무엇이 모든 행복의 조건을 갖추고 있는 그를 현대 사회에서 멀어지게 했는지, 그래서 그가 선택한 삶이 그를 처참하게 파멸시켰는지 나는 아직도 그 해답을 찾지 못하고 있다.

그토록 문명사회로부터 멀어지고 싶었던 크리스 맥켄들리스도 죽어가는 마지막 순간 그가 남긴 저널에서는 “모든 것을 서로 나눌 때, 가장 행복 했었다”고 적고 있다.

인간은 부족할망정 서로를 나누고 이해하며 사랑할 때 진정 삶의 의미가 있는 것인지 모른다.

한 동안 그 책은 나를 상당히 당황하게 하기도 했다. 이 나이에 그런 감정을 느끼는 것이 너무 소녀스러운 것인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그 작품을 쓴 작가 자신도 자연을 무척 사랑해 자연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이다.

이 소설은 사회적으로 많은 논란을 불러 일으켰고 출판된 뒤 2 년 연속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존 크라카우어가 쓴 작품 중 “Into The Thin Air”도 한번 읽어볼 만 한 실화 소설이다. 이 책은 맥킨리 산을 정복한 다음 심한 폭풍으로 함께 등정한 네 사람의 동료를 잃은 슬픔을 담은 소설이다.

페어뱅크로 가는 도중에 있는 ‘힐리’ 라는 작은 도시는 레나나 강 유역 석탄 채굴의 중심지다. 여기서 생산된 석탄 67만 톤이 수워드로 운반 돼 1985년에 처음으로 한국에 수출 됐다고 한다. 알래스카 레일 로드 수입의 20%가 석탄 수출로 채워진다니 얼마나 많은 석탄이 여기서 채굴 되는 지 알만하다.


데날리 국립공원으로 가는 길에 기차에서 내려다 본 알래스카의 자연. 우거진 숲과 강물이 자연의 신비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데날리 국립공원을 연결하는 기차에 오르고 있는 여행객들. 날씨가 새벽부터 꾸물꾸물하더니 비가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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