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어머니의 대나무 자

2010-09-30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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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에 내가 어렸을때 한국의 시골에서 자랄 적에 어머니께서 아주 귀중하게 간직하면서 아끼시던 한가지 물건이 있었다. 그것은 노르스름하면서도 오랜 세월동안 손때가 묻고 잘 닳아, 까무잡잡하고 반질반질한 석자길이(약 1미터)의 대나무 자 였다. 그때 그런 대나무 자는 시골에서는 구하기가 그리 쉽지않은 귀한 물건이었다.

어머니가 그것을 언제 어디에서 어떻게 구하셨는지 나는 자세히 모른다(아마도 시집오실 적에 사갖고 오신 것 같다). 어머니는 그 대나무 자를 장농 속 깊숙히 잘 간직하면서, 절대로 우리들이 그 자를 가지고 장난감 삼아 놀지않도록 철저히 단속하셨다. 그러다가 가끔 옷감을 끊어와 한복이나 이불을 만들적에 꺼내 쓰시고, 때로는 우리들이 장난감이나 공책을 장농틈새나 장농밑으로 빠트려 꺼내기 어려울때 그 자를 이용하여 끌어 내 주시곤 하였다. 또 어떤때는 우리들이 말을 잘 안듣거나 학교성적이 신통치 못하여 우리들을 꾸중할 적에 먼저 찾는 것이 바로 그 자막대기이도 하였다.

그럴때의 그 자막대기는 공포와 고통의 상징이기도 하였다. 그러나 어머니께서 기분이 좋으실때는 우리들을 불러 차례로 벽에 세워 놓으시고 “어디, 우리 쌔끼들 얼마나 컸나 한번 보자” 하면서 그 대나무 자로 키를 재어 보시기도 하였다. 때로는 학교에서 숙제를 받아와 집에서 공부할 적에 긴자가 필요하면 어머니께 특별히 허락을 받아, 그 대나무 자를 장농설합에서 꺼내어 자랑스럽게 줄을 긋기도 하고 길이를 재기도 하며 숙제를 마칠때도 있었다.


이렇게 어머니의 그 대나무 자는 우리들에게 어떤때는 새 옷이나 이불을 만들어 주는 요술쟁이로, 또 다른 어떤때는 우리가 얼마나 자랐는가 재어보는 척도로서, 그리고 어떤때는 어머님 권위의 상징으로, 그런가 하면 우리들에게 체벌을 가하는 공포의 막대기로 비추어지는 등, 우리가 함부로 할 수 없는 경외의 대상이었다.

그런데 하루는 정말로 큰 일이 벌어졌다. 그때 내 동생은(아마 일곱살쯤 되었을 때였다) 삼촌이 선물로 사 준 빨간 고무공을 하나 가지고 있었는데 그 공을 어찌나 좋아했던지 낮이나 밤이나 몸에서 떼어 놓지 않았다. 그날도 그는 공을 가지고 놀다 갑자기 뒤가 급해지자, 공을 손에 든채로 뒷간으로 뛰어 들어갔다.

그리고 어찌어찌 하다가 “아차!” 하는 순간에 그만 그 공을 오물통에 떨어트렸다. 요즘의 수세식 변소와 달리, 그때 시골의 뒷간은 오물통이 깊어 쉽게 손이 닿지 않았다. 동생은 그저 어서 빨리 공을 건져야 하겠다는 생각으로 부리낳게 안방으로 뛰어들어가 장농을 뒤져 어머님이 그토록 아끼시는 대나무 자를 얼른 끄집어 내어 달려나왔다.

그리곤 뒷간의 뒤편으로 돌아가 그 대나무 자로 오물통을 휘젓기 시작하였다. 바람만 조금 불어도 이웃집의 오물냄새가 심심치 않은 동네에서, 조그만 동생이 휘젓기 시작한 오물통의 냄새는 순식간에 온동네 사람들을 구리게 하였다. “아니 뉘기네 집에서 때도 아닌때에 거름을 치는거여!”아마도 그렇게들 서로 두런거렸는지도 모르겠다.

어쨋든 뒤늦게 알고 쫓아 달려온 어머니는 이웃집의 오물 바가지를 빌려 공을 건져주시고는 동생에게 호된 꾸지람과 함께 벌로 대나무 자와 공을 깨끗이 닦아 놓으라고 하셨다. 그러나 오물냄새가 어찌나 지독하게 배었든지 동생이 아무리 열심히 닦아도 냄새는 빠지지 않았다.

어머니는 며칠동안 노여움을 감추지 못 하시고 “못난 녀석 같으니라구! “자”라는 것은 길이를 재는 척도인데 아무리 급해도 그렇지 이놈아! 그것으로 똥통을 휘저으면 어떻게 하느냐!?”라고 역정을 내셨다. 그 뒤에 그 대나무 자가 어찌되었는지 잘 모르겠다. 아마도 얼마동안 더 어머님의 장농 속 깊숙이에서 길이를 재는 척도의 기준으로서 역할을 했을것으로 짐작할 뿐이다.

오늘 아침에 문득 이 생각이 난 것은, 우리는 평소에 곧 잘 그런 실수를 저지르며 살아가고 있기때문이다. 매일 같이 새롭게 발명되고 제작되어 나오는 수 많은 제품들과, 새로이 설립되는 많은 기관들이 창시자 본래의 의도대로 적재적소에 알맞게 감사히 잘 사용될 수 있는 지혜가 절실히 요구되는 시대이다.

(310)968-8945

키 한
뉴스타 부동산 토랜스 지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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