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가을을 맞으며

2010-09-30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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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들어 사상 최고의 기온을 기록하면서 예상치 못한 늦더위가 기승을 부린다.

뜨거운 여름 끝자락에 화려한 정열을 품은 자연이 풍성한 수확을 기다리며 멋스러운 자태를 뽐낸다.

사계절이 뚜렷한 우리나라는 지금 가을의 문턱에 서 있다.


가을의 옷을 입게 되면 거리 풍경이 바뀌고 지난 시절을 그리워하게 하는 마력이 생긴다.

가슴 아픈 기억도 다시는 돌이킬 수 없기에 아름다운 추억으로 변하게 하는 마법에 걸리게 된다.

두고 온 학창 시절이 그립고 못 만나서 더 애틋한 친구들이 나이를 먹지 않고 그대로 두 눈에 어른거린다.

긴 밤을 지새워도 못 다한 말들이 지금도 새롭게 피어나 가슴을 훈훈하게 한다.

두고 온 세월들은 언제나 우리가 힘겨울 때 꿋꿋이 지켜주는 버팀목이 된다.
크고 작은 추억들은 지나고 나면 삶을 아름답게 포장해 주는 위력을 갖고 있다.

아픈 시절을 잘 이겨내면 평생 감사하며 살고 그 고난을 떨치지 못하면 내가 만들어 놓은 작은 세계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마음이 풍요롭지 않으면 벽에 붙어있는 정물화처럼 느낌 없이 밋밋한 삶을 살게 된다.


무엇을 가졌어도 만족스럽지 않고 자신의 주변에 놓여진 모든 환경에 감사가 없다.

쳇바퀴 돌듯 늘 정해진 일상에 젊은 시절의 하루를, 일 년을, 인생을 세월 속에 묻는다.

좀 더 잘 살아보려고 택한 미국생활이 생각보다 그리 녹녹하지 않다.
한 달 열심히 벌어 다달이 돌아오는 페이먼트 갚기가 벅차 작은 수입 쪼개 적금을 드는 미래에 대한 설계조차 버겁기만 하다.

열심히 살면 돈 쓸 시간이 없어 부자가 된다는 말이 이젠 옛말이 되어 버렸다.
20년 이민생활 동안 쓰지 않고 모은 어느 고객이 은퇴자금을 활용하려 느즈막이 고르고 고르다 투자한 사업체가 반 토막이 되면서 지난 세월을 읊은 탄식이 문득 떠올려진다.

“미국에선 은퇴가 없는지 나를 다시 생활전선에 뛰어 들게 하네.” 하며 뒤돌아서는 그 분의 좁은 어깨가 오래도록 시야에 머문다.

가족과 한 번 편안한 여행조차 다니지 못하고 오직 앞만 보고 살아오다 자식과의 교류도 원만치 못한 자신을 이제야 발견한다.

지나간 인생을 돌이키며 지금과 같은 삶에 대한 관조와 아량이 조금이라도 있었다면 자신과 가족을 그렇게 힘들게 하며 살지는 않았을 거라는 탄식에 잠시 숙연해진다.

“삶이란 그저 지나가는 건데 내 욕심과 생각만으로 세상을 잡을 수 있는 줄 알고 무엇이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지를 잊고 산 세월이 너무 안타까워.”
지난 세월이 돌아온다면 무엇보다 자식과 아름다운 추억을 만들고 싶다는 그 분의 소망이 지금이라도 작게나마 이뤄지길 소원한다.

경제가 어렵다.

나라 재정이 어렵고 가정이 힘들다.

여유가 없을수록 가족이란 끈끈한 울타리가 이 난관을 이겨내는 버팀목이 된다.

가을이다.

올해만큼은 그간 멀어진 가족과 대인관계에 아름다운 회복을 꿈꾸는 멋진 수확을 기대해 본다.


(562)304-3993
카니 정
콜드웰뱅커 베스트 부동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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