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금요일 무슬림 사원 5천여명 기도 인파

2010-09-10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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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행가 이형숙의 실크로드를 가다

<14> 사원과 향비의 묘

시장이 끝나는가 싶더니 광장이 나오고 양 옆에 첨탑이 있고 노란 타일을 붙인 이다카(Id Kah) 모스크의 입구가 보인다. 이 사원은 카시가의 가장 중심부에 자리 잡고 있으며 이곳에 사는 무슬림에게는 매우 성스러운 곳이다.

작은 사원을 1442년에 지었는데 그 후 여러 번 증축을 하여 오늘 우리가 보는 사원은 1872년에 마지막으로 증축한 모습이라 한다.


중국 돈 20위엔을 내고 노란 타일로 장식된 입구를 지나 정원을 거처 기도하는 곳이 나오는데 무슬림들은 이곳에 와서 하루에 5번씩 기도한다고 한다. 그리고 금요일 기도시간이 되면 보통 5,000명이 넘는 신자들이 기도실은 물론 문밖 광장까지 모여 무릎을 꿇고 기도한다. 특히 라마단(Ramadan) 때나 코반 축제(Corban Festival) 때는 인근 각지에서 4만~5만명이 모여 성스러운 축제를 지내며, 또한 많은 이들의 정신적 지주인 역할을 하는 곳이다.


시장엔 신선한 양고기·빵 먹음직
기념품 가게의 향비 초상화 아름다워


관광객이 빼놓지 않고 꼭 가는 아바크 호자(Abakh Hoja)의 무덤은 일명 ‘향비의 묘’라고도 부른다.

이 사원 안에는 이슬람 학교와 묘가 있는 ‘슈라인’, 학생들이 거주하는 곳 등 부속 건물이 있다. 또 한 때는 불교를 숭상했던 사람들이 기도드리던 사원이 왼쪽에 자리 잡고 있다.

연꽃을 비롯하여 불교에 관련된 문양이 조각된 14개의 둥근 포퓰라 나무 기둥이 천장을 받치고 있다. 바로 그 옆에 녹색 타일로 장식한 두개의 첨탑이 있는 슈라인이 바로 묘를 모신 곳이다.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에 의하면 아바크 호자의 아버지 우수프(Usuf)가 처음 중국으로 이슬람교를 전파하러 왔을 때 이곳을 다스리는 관리가 그를 매우 못 마땅하게 여겨 아무 일도 못하게 하자 하는 수 없이 우루무치로 가서 몇 년 있다가 다시 카시가로 돌아왔다.

그의 진심을 안 카시가의 어느 부호가 땅과 돈을 희사하여 우수프는 1633년에 소원하던 이슬람 학교와 코란을 가르치는 학교를 세우고 선교에 박차를 시작했다.


이슬람 민족의 지도자로 아버지의 일을 이어받은 아들 아바크가 그의 형제와 함께 청나라 황제 건륭이 이끄는 군대에 가담하여 전쟁에 혁혁한 공을 세워 명실공이 이곳의 군주가 되었다.

1693년 그가 죽자 사람들은 지금 이 자리에 묘를 만들었고 그 후 5대에 걸친 그의 후손들 중 72개의 묘를 쓰게 되는데 지금 이 사원 안에는 58개의 관만 있다고 한다.

호잠(Hojam)은 남자를 일컫고 관이 크며, 파사(Pasha)는 여자라는 뜻으로 중간 크기의 관을 쓰고 아이들은 아주 작은 관을 쓴다고 했다.

청나라 건륭황제는 전쟁이 끝난 후 아바크의 조카인 이파란(Iparhan)을 후궁으로 삼고 함께 북경으로 돌아갔다. 이파란 비는 북경에 있으면서도 멀리 이곳에 있는 그들의 동족들을 위해 많은 힘을 썼다고 한다.

카시가로 돌아가는 것이 마지막 소원이라는 것을 안 황제는 향비가 죽자 시신을 카시가로 돌려보냈는데 자그마치 3년이나 걸렸다고 한다.

그녀의 몸에서는 늘 좋은 향기가 나서 향비라고 불렀다고 하는데 정원에 있는 기념품 가게에 그려져 있는 향비의 초상화를 보니 정말 아름다운 여인이었다.
도시계획에 의해 곧 철거 될지도 모른다는 카시의 옛 동네는 이다카 광장 왼쪽 언덕 위에 있었다.

좁은 골목길, 토담집, 작은 문이 마치 아라비안나이트 속으로 들어온 것 같다.
천진난만하게 웃는 아이들의 웃음소리, 검은 천으로 얼굴을 가려 앞이 보일까 염려되는 아줌마들, 화덕에다 빵을 굽는 둥근 얼굴의 소년, 무엇을 고치는지 연신 망치질만 해대는 햇볕에 그을린 얼굴에 주름이 가득한 할아버지, 고색창연한 빛바랜 사원, 왁자지껄한 재래시장을 들어가니 완전히 연희동 시장에 온 것 같다.

사람 사는 곳은 다 똑 같다. 먹어야 하고 입어야 하고 살림에 필요한 것들을 마련해야 하는데 이곳에 오면 다 해결될 것 같다.

우리네들은 많은 양의 식품을 사서 냉장고에 보관하고 매일 필요한 것들만 꺼내 먹지만 이네들은 매일 매일 필요한 것을 그때그때 시장에 와서 구입하는 듯하다. 특히 양고기는 매일 아침에 잡아서 신선한 고기를 산다고 하는 것을 보니 적어도 고기하고 빵은 매일 신선한 것을 사다 먹는 것 같다. 골목길에서 베이글 같이 생긴 빵을 사서 먹어보니 화덕에서 금새구운 빵이라서인지 쫄깃쫄깃한 게 여간 맛있지 않았다.

하루 종일 시장바닥을 헤매고 돌아다니며 할아버지들은 많이 만나 볼 수 있었는데, 할머니들은 별로 보이지가 않는다. 다들 어디로 갔을까? 얼굴을 수건으로 가려 내가 미처 알아보지 못한 것일까?

옛 동네를 걸어서 구경하고 시장을 돌아 내려오면 다시 이다카 사원이 있는 광장으로 연결된다.


<여행가 이형숙>


몸에서 늘 좋은 향기가 풍겼다고 해서 붙여진 향비가 묻힌 묘. 중국 건륭제의 후궁으로 들어갔다가 죽은 뒤 이곳에 묻히기까지 3년이 걸렸다고 한다


이슬람 문화권은 서방과는 다른 것들이 많다. 남자들만 갈 수 있는 티 하우스에서 현지인들이 차를 마시고 있다.


향비 초상화. 이목구비가 동양인과는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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