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프랑스 등 섭렵 ‘요리계 월드스타’

2010-08-25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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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려한 경력 ‘한식 전도사’ 애나 김 셰프

조엘 로부숑의 라틀리에, 노부, 포시즌스 호텔, 인터콘티넨탈 호텔, 고든 렘지의 런던호텔 웨스트할리웃,

세계요리대회 심사위원, 코스타 유로 크루즈 한국 조리팀 총 셰프 디렉터 등
그 이름만으로도 요리계에서는 월드 스타급의 화려한 이력을 가진 한인 셰프가 있다.

지난해 12월 LG 주최로 태국 방콕에서 열린 세계 친환경 요리대회에서 심사위원 자격으로 참가하여


요리 쇼를 통해 한식이 어느 면에서도 모자람 없는 자연 친환경 요리임을 선보이며 한국 언론에도

본격적으로 소개되기 시작한 숨은 보석과도 같은 한인 셰프 애나 김(Anna Kim)씨의 이야기이다.


한인 스타 셰프 애나 김씨와 그가 만든 오렌지 된장소스의 연어구이(오른쪽)와 겨자상추 보쌈.


그녀를 처음 만난 것은 2년 전 여름, 한국에서 있었던 김치 다큐멘터리 영화 ‘김치칸’의 촬영장이었는데, 단정히 묶은 머리에 검은 셰프 재킷을 입고 배낭을 둘러메고 나타난 그 모습은 강인한 아름다움을 가진 동시에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었다. 작은 것 하나 그냥 지나치니 않으며 자상하게 요리 공부하는 학생들을 대하는 모습이 요즘 인기 있다는 ‘따뜻한 카리스마’ 그 자체였다.

시간이 꽤 흘러 다시 한인타운에서 만난 그녀는 여전히 씩씩하고 정열이 넘치는 모습이었다. 좋은 에너지가 흘러나와 주변까지 밝게 만들어주는 기운이 감돌아 ‘아! 음식 만드는 사람은 저래야 하는구나’ 하는 기대를 가지고 마주 앉았다.

15년 전 화공학도로서 한국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UC버클리로 환경 실내건축을 공부하기 위해 유학길에 오른 그녀 앞에 셰프로서의 인생이 기다리고 있으리라는 것은 본인도 상상하지 못한 일이다. 학비를 벌기 위해 취직한 식당에서 한 달만에 매니저로 승격됐다는데, 그녀를 직접 만나보니 가능했겠다는 생각이 든다. 원래 좋아했다는 음식 일에서 얼마나 열심히, 열정적으로 일했을지 짐작이 가기 때문이다.

김씨를 매니저로 승격시켜 준 식당 오너로부터 식당을 맡아 본격적으로 운영해 보지 않겠느냐는 제안을 받았는데 부족한 부분이 많음을 알고 샌프란시스코의 르 꼬르동 블루에 입학하면서 그녀의 또 다른 인생이 시작되었다.


학생으로 요리에 대해 배우는 모든 것에 100점 만점의 꼬리표가 붙기 시작하면서 5개월 후 학교장으로부터 프랑스로 유학을 떠나라는 요청을 받고 혈혈단신 프랑스로 건너가 본교에서 1년반에 걸쳐 요리 베이킹을 마스터하게 된다.

다큐영화 ‘김치칸’의 주인공 활약도



미국과는 또 달리 음식을 하나의 예술 장르에 놓고 너무나 심각하고 진지하게 대하는 그들 속에서 처음엔 그 누구도 반갑게 환대해 주거나 따뜻하게 맞아주는 이가 없더란다.

언어의 부족, 인종차별뿐 아니라 여성으로도 좋을 것 하나 없는 조건에서 그녀는 재학기간에 일등을 놓치지 않은 최초의 아시안 여학생이 되었다. 당시에도 간간이 한국 학생들이 있었으나 모두 부유한 환경 속에서 자란 탓인지 그야말로 목숨 걸고 요리하는 학생이 없었기에 김씨의 활약은 단연 돋보였고 그녀로 인해 한국 학생에 대한 이미지가 좋아졌다고 하여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고 한다.


그렇게 학교를 졸업하니 그녀 앞에 신세계로 들어설 멋진 문이 열렸다. 미슐랭 가이드의 별 세 개, 그야말로 세계 최고의 프랑스 음식을 만들어내는 라틀리에 드 조엘 로부숑에서 함께 일하자는 제의를 받고 페이스트리 수 셰프의 자리까지 오르게 된다. 하루 16시간을 일하면서 일주일 중 눈을 뜨고 쉴 수 있는 시간은 반나절이 채 되지 않았으며 발에는 물집이 생겨 초컬릿을 굳히는 냉각 스프레이를 뿌리고 살았을 정도라고 했다.

별 세 개 최고 정상의 자리에서 실수란 용납되지 않았고, 매 순간의 배움 속에는 그 만큼의 고통과 인내가 동반되어 셰프로서의 그녀를 더욱 단단히 만들어주었다. 가늠할 수 없을 정도의 스트레스와 함께 혹독했던 만큼 세상 어디서도 얻을 수 없는 음식에 대한 고민으로 마치 뼈 속까지 프랑스인들처럼 ‘정말 요리를 제대로 배운 것이다.’

그 후 스페인 마드리드의 실크 앤 스파이스 레스토랑의 총 부주방장으로 경력을 쌓아 스페인의 정열적이고 감성이 풍부한 요리 세계와 문화를 경험하게 된다. 다시 미국으로 돌아와 가장 존경할 만한 스승을 만나게 되는데 바로 노부 마쯔히사. 그에서 배운 것을 말하려면 하루를 다 써도 모자란다는데 그런 그와 함께 하와이 팍호텔의 ‘노부’ 오픈을 도와 셰프 드 파티셰로서 자연에서 영감을 얹은 아름다운 애피타이저와 어뮤즈를 자유롭게 만들며 지냈다.

마쯔히사가 가장 좋아하는 메뉴는 다름 아닌 밥과 쯔께모노에 잘 끓인 미소장국이라 하며 배고픈 육체와 마음까지도 따뜻하게 달래줄 수 있도록 음식에 담겨야 할 가장 기본적인 마음가짐에 대해 가까이서 원도 한도 없이 배웠다고 한다.

그 후, 미국에서 마음의 고향이나 마찬가지인 샌프란시스코의 포시즌스 호텔로 옮기며 리더셰프로 근무하였다. 역시 미슐랭 별을 받은 샌프란시스코의 인터콘티넨탈 호텔 내의 ‘루체’의 셰프 드 퀴진 도미니크 크랜과 오픈 멤버로서 함께 메뉴를 구상하고 레스토랑을 성공적으로 이끌어나갔다. 도미니크 크랜은 얼마 전 아이언 셰프에서 셰프 사이먼과 대결을 펼쳐 주목을 받은 강하고 아름다운 여성 프렌치 셰프이다.


조엘 로부숑의 라틀리에
고든 렘지의 웨스트할리웃
노부, 포시즌스 호텔 등 거쳐


후에 LA로 와 고든 램지 앳 더 런던 웨스트할리웃의 리더 셰프로 일했으며, 할리웃의 스티브 신 감독이 제작하고 있는 최초의 김치 다큐멘터리 김치칸의 주인공 셰프로서 최고의 식재료를 찾아 대한민국 구석구석을 순례하며 한식의 깊이에 푹 빠져들어 지냈다.

지난해에는 한국 정부가 추진하는 한식 세계화의 일환으로 LG의 후원을 받아 태국 방콕에서 열린 LG 세계요리대회 심사위원으로 참가하여 미국의 유일한 여성 아이언 셰프 캣 코라와 함께 요리 쇼를 펼쳐 한식의 위상을 드높이는데 일조하였다.

현재는 럭서리 크루즈의 대명사인 코스타 유로 크루즈와 제휴하여 매일 아침 이탈리아와 화상통화로 하루를 시작하는데, 다가올 추석을 맞아 부산에서 출발하여 일본의 가고시마, 나가사키, 미야자키, 고베 등을 여행하는 크루즈의 한국 조리팀 총책임을 맡아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다.


현재는 코스타 유로 크루즈
한국요리 총 셰프 디렉터로
자연스런 한식 전파에 심혈


한식 세계화를 위한 여러 가지 이벤트도 좋지만 앞으로 유로 크루즈 같은 1,000명에서 많게는 2,000명도 넘는 사람들이 즐기는 문화 속에 한식을 자연스럽게 선보이게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각오이다. 항상 배움에 게으르지 않는 그녀는 현재 보스턴 대학에서 음식미학으로 석사과정을 이수 중이다. 이러한 세계적인 감각과 경험을 두루 갖춘 훌륭한 셰프가 있기에 한식의 세계화도 그리 멀게 느껴지지 만은 않는다.

화려한 경력 때문에 운이 좋은 사람으로 보일 수도 있겠지만 한 가지 일을 최선을 다해 끝내놓고 나니 또 다른 문이 열렸으며 그렇게 하나하나 쌓인 경력이 지금의 그녀를 만들어 놓았다고 들려준다. 마치 마법 같이 열리는 새로운 문들을 향해 그저 최선을 다할 뿐인 그녀는 그러지 않아도 될 만큼 겸손했고, 무엇하나 그냥 지나는 법이 없이 작은 것에도 사랑의 눈길을 보낼 줄 아는 사람이었다. 월드 스타급 셰프로서 그녀의 눈부신 활약을 기대하는 마음이 벌써부터 설렌다.


<글 ·사진 이은영 객원기자>


요리대회 심사를 맡은 애나 김(왼쪽)씨와 아이언 셰프 캣 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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