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칼럼/ 백령도에서 온 메일

2010-05-07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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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병임(논설위원)

우리에게 너무나 먼 지명 ‘백령도’가 최근 두달이상 매일같이 한인들의 화제가 되었다. 군사전략적으로 중요한 지역인 백령도는 날씨가 좋으면 북한땅이 손에 잡힐 듯 가까이 보이는 곳이라 했다.지난 3월 26일 백령도 연화리 해안에 두동강 난 채 침몰한 천안함 사건이 발생했다. 신문과 TV를 통해 뉴스를 보고 듣는 우리들 심정은 참담했고 천안함 희생자 46명의 꽃처럼 화사한 얼굴과 이름을 차마 바로 볼 수 없었다. 그리고 천안함 실종자 수색작업을 하고 돌아오다 불의의 사고를 당한 금양호 선원들의 죽음에는 할 말을 잊었다.

지난 2월경 30년간 교직에 있는 대학시절 단짝친구부터 이메일이 왔다. “나, 백령도 자원했다.” 나는 이 나이에 무슨 섬마을 선생님 싶어서 “도대체 왜 그곳을 자원했냐”고 물었다.교감과 교장이 되고 싶은 건가 했더니 그것은 어느 정도 가능성이 있을 뿐이고 정년9년을 앞두고 섬학교에 근무하면서 좀 다채로운 교사생활을 하고 싶어서라는 답이 왔다. 그동안 아내, 엄마, 며느리, 딸로 열과 성을 다해서 살아왔으므로 혼자 살아보는 3년이 인생의 오후에서 재충전하는 방학쯤 되지 않을까 해서란다. 인천 연안부두에서 뱃길로 네시간 반, 연중 악천우로 4분의 1은 육지로 가는 배가 뜨지 않는다는 바람 세고 텃새 센 그곳에 발령을 받아 ‘무진의 안개속 같은 백령도’(우리의 젊음에는 김승옥의 소설 ‘무진기행’이 빠질 수 없다)에서 사는 그녀.


새벽 5시에 일어나 7시까지 교재연구, 종일 7교시 수업, 자율학습감독, 시험문제 출제 등 거의 매일 12시까지 학교에서 일한다 했다. 관사에서 4시간 자고 일어나 다시 학교로 간다며 발바닥에 평생 없던 티눈까지 생겼다는 그녀가 “학교 안에 대피소 있는 학교 있으면 나와보라”는 여유도 생겼다.
그녀가 백령도로 간 지 한달후 천안함 사건이 터지고 사고해역과 함수인양 현장에서 해병대 신참군인을 보고 아들을 군인 보낸 에미 맘이 그 맘이라며 코끝이 짜안해졌다고 전했다. 수업 중에 유리창 밖으로 헬기가 날아가고 해양소년단 대청도 단체훈련, 바닷가 위령제, 여단본부 조문 등 이런저런 행사에 참여하는 와중에도 문제집 한권을 다 마친 담임반 아이에게 책거리 짜장면을 사주는 ‘짜아 데이’를 어김없이 지키고 있었다.나는 더 이상 그녀에게 왜 백령도에 갔냐고 하지 않는다.

이맘때면 백령도와 대청도의 자랑인 기암절벽을 보러 관광객이 몰려들어 주민 60%가 상업으로 생계를 유지해 왔는데 관광객이 들어오지 않는다고 한다. 어쩔 수 없이 사람이 그렇게 많이 죽어나간 바다에서 생업을 위해 고기를 잡는 그 마음이 어떨 지 생각해 보았는지? 이 화사한 봄날, 상처 입은 백령도 주민들과 학생들은 누구에게 그 보상을 받아야 할까. 한국정부가 금양호 선원에게 민간인으로서 최고 보상을 해주고 백령도 주민에게도 적절한 보호 및 보상책을 마련해 주기 바란다.난 내 친구가 자신들이 못 배웠기에, 바다에 목숨 걸고 살기에 더욱 학구열이 높다는 학부형과 소년들의 놀란 가슴을 안정시켜주고 보듬어 주리라 믿는다. 그녀는 틈틈이 학교 근처 야생화, 논둑의 쑥과 냉이, 달래 등을 촬영하여 섬의 아름다움을 찾아내주고 ‘봄 햇살처럼 밝은 우리 해양소년단’ 이란 제목아래 손가락으로 브이 자를 그리며 해사하게 웃는 소년들 사진을 백령도 연가 블로그에 올리고 있다.

가족과 떨어져 있으니 더러 새롭고 더러 힘들고 3주에 한번씩 연안부두에서 마중나온 가족과 상봉하면서 섬에서는 엄마 된 힘으로 산다며, ‘나를 웃게 만드는 아이들이 너무 예쁘다’는 그녀는 바다 청소년들의 삶에 훌륭한 길잡이가 될 것이다.힘들겠다는 내게 그녀는 “고생이랄 거 뭐 있겠냐, 내가 선택한 것을” 하고 메일을 보내왔다. 씩씩, 용감, 늠름한 친구에게 건투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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