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신, 일상, 깨달음 - 수상한 봄

2010-04-19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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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봄 기온은 정상이 아닙니다. 구태여 먼 지역의 기상이변을 이야기할 필요도 없겠습니다. 제가 살고 있는 워싱턴주 밴쿠버라는 작은 도시의 일기도 예외가 아닙니다.

3월 초순, 봄이려니 하고 다투어 핀 꽃들이 고운 제 모습 한번 펼치지도 못하고 때 아닌 냉기류와 그치지 않는 빗줄기, 느닷없는 폭설에 모두 참살되고 말았습니다. 4월 초순인 며칠 전에는 아침엔 찬란한 햇빛이더니 오전에 갑자기 하늘이 어두워지고 비가 쏟아졌습니다. 그리고 잠시 비가 그치는 듯하다가 짙은 안개가 몰려왔습니다. 또 조금 후에는 햇빛이 잠깐 비치다가 금방 함박눈이 내리더니 다시 콩알 만한 우박으로 변했습니다. 불과 하루나절에 기후의 변화가 가히 총천연색이었습니다.

그런 이상기온을 바라보는 마음들도 그다지 편할 리가 없습니다. 우리가 얼마나 함부로 살았으면 지구가 이렇게 이성을 잃고 비틀거릴까 하는 연민과 우려가 함께 들었기 때문입니다.


말이 나왔으니까 하는 말인데, 저는 요즘 한국의 환경보호론자들의 주의주장에 그다지 무게를 두지 않습니다. 걸핏하면 피켓을 들고 나서서 주먹을 흔들며 환경을 핑계 삼아 국가 정책에 제동을 거는 사람들이 그다지 좋아 보이지 않습니다. 좁은 땅에 조밀한 인구의 우리나라 자연환경이 그런 식으로 개선이 될 것 같지 않기 때문입니다.

환경문제는 완력과 주장의 문제가 아니라 개개인의 절제와 실천의 문제입니다. 대낮에도 전등을 켜고, 조금만 추워도 히팅을 높이고, 마치 고기반찬이 올라야 식탁이 되는 것처럼 사는 소비 불감증의 사람들이 대다수라면 아무리 떠들어도 환경보호는 물 건너가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환경보호란 한 사람의 삶의 태도에서 시작되는 것이지 국가정책만으로 실효를 거둘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그러므로 진정한 환경보호자라면 정치성이 강한 시위가 아니라, 자원 절약과 소비 절제를 실천하는 조용한 사회운동을 벌여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얼마 전 무소유의 삶을 가르친 법정 스님이 입적하면서 자기 저서들은 절판하라는 유언을 남겼다고 합니다. 책 같지도 않은 책을 마구 찍어내는 현실에서, 자기의 저서까지 남겨서 물질적, 정신적 낭비를 더하는 공해를 막자는 뜻이었겠지요. 그러나 웃지 못할 일이 벌어졌습니다. 그 분의 저서를 사겠다는 사람들이 벌떼같이 몰려들어 아우성치는 바람에 금방 책이 매진되었고, 심지어는 인터넷에서는 웃돈까지 붙여서 거래가 된다고 합니다. 자기 생애의 깨끗한 마무리를 원하는 법정 스님의 무소유의 뜻이 무색해지고 말았습니다. 자기 돈으로 법정의 책을 사 두겠다는 사람들을 누가 말리겠습니까만, 법정의 무소유 당부는 그야말로 공염불이 된 셈입니다. 환경론자들이 주먹을 쥔 팔을 흔들며 떠드는 환경보호라는 것도 어쩌면 이런 식이 아닐까 싶습니다.

세탁기의 빨래는 어쩔 수가 없지만 부엌의 설거지는 세척제를 쓰지 않고 밀가루로 기름기를 지워 씻는다는 주부를 보았습니다. 또 북한 동포들의 굶주림을 생각해서 밥을 남기지 않기로 결심한 분도 있습니다. 어떤 이웃은 쓰레기를 꼼꼼하게 분리해서 재활용을 돕는다는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이렇게 자기 편리와 낭비를 조금씩 줄이고 절제하는 지각 있는 실천이 필요한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이 지구라는 혹성에 태어나 잠시 생명을 누리다가 떠나야 하는 존재들입니다. 그 잠시의 삶이란 천상병의 ‘귀천’을 들먹이지 않아도 아름답고, 소중한 시간들입니다. 또 우리가 머물다 가는 이 지구라는 혹성은 더 말할 나위 없이 고마운 공간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살다가 떠나가는 자리를 다음에 생명을 가지고 태어나는 이들에게 좀 깨끗하게 물려주기 위하여 우리 모두 마음과 현실의 빗자루를 들어야 하겠습니다. 시절이 하 수상합니다.


송순태 / 카라미션 운영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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