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복음 이야기 - 너무도 짧은 집행유예

2010-04-15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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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을 건너가느라 은어들도 엄벙덤벙 튄다/ 저것들은 물이 집이다/ 요즘도 누군가 다리 밑에다 애들을 버리긴 버리는 모양이지만/ 알고 보면 우리가 사는 이 큰 별도 누군가 내다 버린 것이고/ 긴 여름도 잠깐이다” 최근 시집을 읽다가 눈길이 머문 시 한 대목이다. 아무 것도 없는 공중에 매달려 정확히 자전과 공전을 되풀이하는 둥근 땅. ‘누군가’가 버리지 않고 매순간 단단히 붙들어 매고 있지 않고서야 불가능한 기적이 아닐까.

나무는 뿌리를 땅에 박고 있어야 산다. 땅을 박차고 뿌리를 하늘로 뻗치면 즉사한다. 물고기가 물 밖이나 공중에서 못 살듯 인간은 물속이나 대기권 밖에선 못 산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어진 인간은 물리적 법칙뿐만 아니라 도덕적 법칙에도 예속된다. 창조주는 전능하시고도 거룩하신 분이며, 그 거룩한 형상의 특성은 인간만이 가진 양심에 지울 수 없는 흔적으로 남아 있다.

우주의 물리적 세계는 법칙대로 질서정연하다. 우주의 일원인 당신의 몸도 준법정신 하나만큼은 투철하다. 때가 되면 밥을 먹고, 노쇠하면 죽는다. 단 한 곳 ‘치외법권’ 지대처럼 보이는 데가 있다. 제멋대로 고삐 풀린 듯한 인간의 죄악상이다. 양심에 새긴 창조주의 도덕법을 어기는데도 즉사하지 않는다. 우주는 고요하고 아름답지만 세상은 자유의지를 가진 인간들의 온갖 죄악으로 어수선하다.


우주의 물리적 운행에는 빈틈없이 적용되는 법이 왜 인간의 도덕성에는 그대로 적용되지 않는가. 왜 지금 이 지상에서 활개 치는 악인들을 처벌하는 일에 하나님은 그저 침묵하는 방관자처럼 보일까. 답은 하나다. 지옥이 있기 때문이다.

우주를 만드시고 만물의 운행법칙을 주관하는 통치권자가 전능하기만 하고 선하지 않다면 어떻게 될까. 변덕이 죽 끓듯 하는 악한이라면 어떨까. 지구의 하루가 24시간이다가 어느 날은 17시간28분이기도 하다면 어떻게 될까. 우주는 예측 불가능한 무질서와 대혼돈 가운데 빠진다. 인간의 삶도 뒤죽박죽 어느 하나 안정된 구석이 없을 것이다.

거룩함과 신실함의 속성이 따르지 않는 전능함은 불완전하다. 그 자체가 통제 못할 악이 될 수도 있다. 창조주의 전능함으로 정교하게 지어진 우주만물은 그분의 선하고 신뢰할 만한 주권과 통치권 아래 존재할 때 온전한 조화를 이룬다. 첫 사람 아담의 타락은 바로 이 주권에 대한 어처구니없는 반항이요 불순종이었다.

만일 하나님께서 통치법을 어긴 죄인을 차후 지옥에서라도 공정하게 심판하시지 않는다면, 그분 자신이 죄인 되실 것이다. 지옥이 없다고 말하려는 것은 하나님을 ‘범인은닉죄’의 공범자로 전락시키는 무모한 시도다. 온 우주 가운데서 티끌만한 죄 한 톨이라도 그냥 눈감아준다면, 하나님은 우주의 떳떳한 통치자가 될 자격이 없다. 우주 공간 어느 한 귀퉁이에라도 얹혀사는 한 이 엄격한 통치권의 영역에서 예외인 자는 없다.

지구는 누군가가 내다버린 별이 아니다. 단지 사람에게 왕의 합당한 통치권 안으로 되돌아올 유예기간을 준 그 ‘누군가’의 엄청난 인내와 사랑 때문에 이 땅에서나, 아버지를 잃은 고아와 같은 인간의 문학 속에서나 잠시 내다버린 행성처럼 보일 뿐이다. 문제는 그 돌이킴의 기회로 주어진 유예기간이 장차 선고될 영원한 형기에 비하면 너무 짧다는 것이다. 정말 ‘긴 여름도 잠깐’이다. ‘악한 일에 관한 징벌이 속히 실행되지 아니하므로 인생들이 악을 행하는 데에 마음이 담대하도다’(전 8:11).


안환균 / 사랑의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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