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기윤실 호루라기 - 기독교와 법정의 무소유

2010-03-31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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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난 1970년대 초에 월간지 ‘샘터’에서 법정 스님을 처음 만난 후 무소유 등 스님의 모든 글과 책을 모아 읽으면서 그의 사상과 사역과 수도자로서의 태도에 마음이 끌려서 종교를 떠나서 그를 좋아하고 존경하게 되었다.

법정 스님은 자기의 소신인 무소유를 평생의 삶에서 실천하신 분이다. 그는 자유로운 사고의 소유자로 승려로서 한 사찰에 매이지 않고 타 종교와도 잘 소통하였고 유신반대, 인혁당 사건과 자연을 사랑하여 환경보호와 생명사랑 운동에도 참여하는 등 행동하는 종교인이었다.

그는 “무소유란 아무 것도 가지지 않는 것이 아니라 불필요한 것을 갖지 않는다는 뜻이다. 행복은 소유에 얽매이지 않고 불필요한 것에서 얼마나 자유로워져 있는가에 달렸다”고 하였다. 또 “단순하게 간단하게 살아야 남과 나눌 수 있고 관용의 열매를 맺을 수 있다”고 하였다.


이런 그의 생각으로 ‘맑고 향기롭게’라는 자선단체를 만들어서 불우한 이웃을 돌보았고 베스트셀러 작가로서 10억원이 넘는 인세 수입을 무상 보시하였다. 장례식은 간단하게 치르고 생전에 쓴 책들도 더 내지 말라고 유언하였다. 나는 이런 법정 스님의 진지한 무소유의 삶을 보면서 오늘의 우리 크리스천과 교회의 모습을 돌아보게 된다.

기독교사를 보면 초대 예루살렘 교회는 구제하고 유무상통하는 그야말로 무소유의 생활신앙 공동체였다. 그리고 예수님처럼 철저하게 무소유로 살고 자기 목숨까지를 버려서 인류를 구원한 분이 또 어디 있었겠는가! 그의 제자로 바울과 테레사 수녀와 힌두교도인 마하트마 간디가 나왔다.

그런데 오늘의 크리스천과 교회의 모습은 이런 우리 선조들의 모습과는 많이 달라져 있다.

교회도 교인도 너무 많이 가지고 더 커가려고만 하고 있지 않은가? 70만명이 모인다는 세계에서 제일 큰 교회, 2,000억원이 넘는 큰돈을 들여서 새로운 예배당을 짓고 있는 교회, 이것이 우리의 참다운 모습으로 세상에 자랑이 될 수 있을까? ‘긍정의 힘’ ‘목적이 이끄는 삶’ ‘야베스의 기도’가 주는 의미인 형통과 성취와 복의 논리가 우리 교회의 성장의 수단과 목적으로 되어 있다.

오늘의 우리 크리스천에게는 열렬한 신앙은 있는지 모르지만 경건의 모습은 없어 보인다. 우리 교회들이 그렇게 많이 선교하고 타종교에 비하면 구제와 사회봉사도 더 많이 하는데도 세상 사람들에게는 부정적으로 비치고 있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우리의 이중적인 삶의 모습, 위선적인 신앙의 행태가 그들로 거부감을 느끼게 한 것이 아닐까?

오늘 우리 크리스천과 교회에 요구되는 것은 성경공부와 제자훈련과 맹목적인 성장이 아니라 어쩌면 중세 수도원적인 절제와 금욕과 축소와 무소유의 영성 아닐까?

이해인 수녀는 법정 스님 추도시에서 작년에 가신 김수환 추기경이 넓게 펴고 세상을 품은 느티나무였다면 법정 스님은 푸르름을 잃지 않는 꼿꼿한 소나무였다고 하였다.

우리 크리스천들은 사순절을 지키며 막 종려주일을 지냈다. 어린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는 예수님의 겸손한 모습이 보인다. 오늘 우리 개신교에도 예수님처럼 겸손한 제자, 세상에서 존경받는 참다운 지도자가 나오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유용석 / LA 기윤실 실무책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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