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현장에서 - 에이전트 엄마는 아이에게 미안해

2010-03-11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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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도록 싸운다라고 하면 지나친 표현일까? 급기야 운전하다말고 상대방에게 버럭버럭 소리지른다. 함께 있다 뿐이랴 차에 연결된 전화, 아이도 고스란히 듣는다. 싸우는 영어는 꼭 속도가 빨라지고 공격적인 억양이 된다. 흥분한 엄마 때문에 긴장한 아이는 말없이 옆자리에 앉아 있다. 자제해야 하는데 영어로 하는 싸움에는 도무지 그런 여유가 없다. 한국말로 하면 싸움도 쉽다.

은행 매물을 남보다 싸게 사야 한다. 이자율이 제일 싼 융자이어야 한다. 셀러는 망해서 나가는 사람이다. 혹시 집이 그 사이 더 망가졌는지 확인해야 해. 아니 셀러가 분명히 이사 나갈 수 있는지 이사 갈 집의 계약서도 보아야겠다. 바이어는 걱정이 끊이지 않는다. 고약한 셀러들은 집을 망가뜨리고 이사를 미루어 몇 달째 손해를 보고 급기야 변호사까지 사서 내쫓는다는데 어떻게 미리 이사 나가게 할 수 없을까?

셀러는 가슴이 찢어진다. 20년 가까이 짧지 않은 지난 세월, 자식 키우며 살아온 보금자리인데 1년 넘게 집 페이먼트가 밀리고 이제 집을 나간다. 한 푼 남기지 못하고 은행으로부터 등 떠밀려 나가는 기분, 마누라도 아이들도 초상집 수준이다. 예쁘게 협조적으로 바이어에게 열쇠를 넘겨 줄 상황이 아니다. 친구 하나는 이사를 먼저 했는데 바이어가 마지막 순간에 계약을 취소했다 한다. 이사 간 집에는 계속해서 집세를 내고 다시 집을 파는데 몇 달 더 걸렸다고 했다. 나는 완전히 끝난 다음에 이사 나갈 것이다.


간단하다. 이사를 먼저 나가라는 바이어, 에스크로를 먼저 끝내라는 셀러이다. 어느 한 쪽이 양보하지 않으면 영원히 끝나지 않는다. 아이 둘이서 과자 봉지를 움켜쥐고 서로 먼저 놓으라고 노려보고 있는 상황이다. 불경기 때 그리고 개인적으로도 절체절명의 순간에는 사람들이 각박해지고 이성을 잃으며 또 그만큼 유치해지기도 한다. 어른의 여유가 없어진다. 나 건들지 마가 된다. 벌써2주째, 은행에서 준 마감 날자는 다가오고 에이전트끼리 이야기할 때마다 뒤통수가 뜨끈뜨끈해진다. 열 오르고 머리 뚜껑이 열리며 지구를 떠나고 싶은 이 엄마는 부동산 에이전트이다.

정상 세일이라면 이 정도 쯤 쉽게 해결한다. 길어야 한 두 달 에스크로이다. 에너지가 있다. 그러나 이것은 작년 7월에 시작하여 이제야 겨우 승인받은 숏 세일의 끝자락이다. 상대방은 지난 7,8개월 동안 지쳐가는 바이어를 달래느라 얼이 다 빠져 있고 셀러의 에이전트는 서류만 보아도 신물이 다 난다.

밤새 죽을 꾀를 생각해낸다더니 저 쪽에서 네 손님 이사 나갈 때까지 커미션을 잡자고 전화한다. 그러나 날아온 이메일에는 어떤 손상이 있을 경우 에이전트가 보상한다는 항목까지 있다. 바이어는 집을 사서 행복하고 셀러는 빚 탕감 새 출발해서 좋고, 아니 그런데 왜 그 대목에서 에이전트가 이미 은행에서 경비 절감을 이유로 깍은 커미션에서 또 각출하여 집을 고치느냐고요.

이야기는 끝이다. 안 해. 지금부터는 너하고 싶은 대로 다해. 싫으면 사지 마. 다른 바이어에게 팔 거야. 이미 받아 놓은 승인이고 좋은 가격이야. 너는 아웃이야. 나쁜 이야기를 전할 때처럼 이메일이 편리할 때는 없다. 키보드 하나 톡 쳐서 편지 보내고 컴퓨터의 전원을 끄고 잠자리에 들면 된다. 내일은 또 내일의 태양이 뜨는 법이니까.

태양은 다시 뜨고 나는 또 싸우고 있다. 그것도 아이를 무방비로 노출시킨 채. 경기가 훈훈할 때는 셀러도 바이어도 이러지 않았다. 며칠 씩 서로 편리를 보아주고 커미션을 깍지 않았으며 에이전트는 매끄러운 진행을 위해 그 일부를 흔쾌히 내놓기도 했다. 돌고 도는 것이 경기라 했다. 차면 기울고 떨어지면 오른다. 또 다시 그런 날이오리라. 아, 이제 이쯤에서 이 싸움을 끝내자. 모든 것을 양보하자. 그리고 세월을 낚는 강태공이 되어 볼거나.

부동산 시장이 안정되고 있다. 작년 4/4분기 하락이 1.2%에 그쳐 지난 2년 동안 가장 낮다. 아직도 높은 실업율, 은행 연체와 차압 매물 등의 악재가 남아 있으나 느리게나마 회복세에 접어들고 있다. 나쁜 것도 좋은 것도 다 한 때, 그 끝없는 반복을 거듭하고 그래서 인생은 문제 해결의 연속이라 했다. 좋은 날은 또 금방 온다는 믿음으로 열심히 살자. 그래도 아이에게는 늘 싸우는 엄마가 너무 미안하다.

(818)317-8525, sunnyms@pacbell.net


서니 김 <리맥스 부동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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