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나눔의 행복 - 농부의 아들의 교훈

2010-02-24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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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 나라 요즘 정말 대단하더라.” “뭐가? 동계올림픽에서 한국이 최상의 성적을 올리고 있잖아!” “고마워, 근데 말이지, 흠… 우리나라는 원래 하려고만 하면 뭐든지 잘해.”

잦은 출장으로 사무실을 좀 오래 비웠다가 출근한 며칠 전, 우연히 복도에서 마주친 평소 가까운 미국인 동료와의 몇 마디 대화였습니다. 은근히 자랑스럽기도 하고, 뽐내고도 싶은 마음을 유치하다고 억누르며 대수롭지 않은 척 넘어가느라 힘들었습니다.

사실 요즘, 우리 한국의 지구촌 내에서의 비상은 괄목할 만한 것입니다. 스포츠 분야를 들여다보면 동·하계 올림픽 뿐 아니라 세계 최고 수준을 자랑하는 미국 야구 메이저리그나 영국 축구 프리미어리그에서 뛰는 한국인 선수들을 보는 것이 더 이상 특별한 일이 아니고, LPGA는 한국 낭자군의 무혈점령이 끝난 상태입니다. 한국의 현대, 기아차는 경제 분야서도 자동차 가속페달 문제로 한순간에 무너져 내리고 있는 일본 도요타 자동차가 무색할 정도로 쾌속질주하고 있으며, 전자제품 시장에서 삼성의 독주는 이미 소니의 신화를 전설 속에 묻어 버린 지 오래입니다. 게다가 국제외교 분야에서도 전 세계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유엔의 수장이 한국인임을 감안할 때 그 위상은 우리가 피부로 느끼는 것 이상인 듯합니다.


사실 자신이 관심 있는 분야 외에는 별로 주의를 기울이지 않은 미국인 친구들의 입에도 한국이 자주 오르내리는 것을 보면 그 자체가 커다란 변화임에 틀림이 없는 것 같습니다. 작년 여름 미국인 동료들이 약간은 호들갑스럽게 제게 축하를 해 준 적이 있습니다.

PGA에서 무명의 양용은 선수가 PGA 챔피언십에서 골프황제 타이거 우즈의 불패신화를 무너뜨리며 우승했을 때입니다. 만나는 사람들마다 그 얘기를 하며 “미스터 양을 아냐?”고 물어보는 바람에 인터넷을 통해 ‘양용은 스터디’를 해야 했을 정도입니다. 골프장 캐디로 시작해 뒤늦게 골프에 입문한 그가 한계를 극복하고 꿈을 이룬 흔치 않은 스토리가 당시 주류 언론을 온통 뒤덮었습니다.

그후 1년6개월이 지난 2월22일, PGA 홈페이지에 양용은 선수에 대한 기사가 다시 등장했습니다. 골프 성적 이야기가 아니라, 그가 그의 아들이 다니는 초등학교의 생명수업 기자재 구입을 위해 학부모회에서 주최하는 경매 도네이션 행사에 기념품을 제공했다는 것입니다. 기부가 상식이 되어버린 미국에서 학교 후원행사에 기념품을 낸 게 뭐 그리 대단하다고 대서특필 되는가 의아하게 여기며 기사를 자세히 읽어본 저는 놀라움과 감동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가 제공한 기념품은 타이거 우즈를 꺾고 우승했던 당시 그가 입었던 티셔츠와 18번 홀 핀 깃발이었습니다. 학부모회 이사는 이에 대해 말했습니다. “수만달러 이상의 소장가치뿐 아니라 역사적 가치까지 동시에 지닌, 자신과 가족에게 가장 소중할 수도 있는 기념품을 친필서명을 해 제공한 그에게 감사와 존경을 보냅니다.”

기사 끝부분에 인용된 양용은 선수의 말은 그 어떤 유명인사나 석학의 메시지보다 제게 큰 울림을 주었습니다. 그는 단순히 골프황제를 꺾은 골퍼로서의 유명인사가 아닌, 인생의 진정한 가치를 알고 있는 거인이었습니다.

“그 날의 승리의 감동은 영원히 내 가슴 속에서 살아 숨 쉴 것입니다. 티셔츠는 물론 내게도 소중한 기념품입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팬들의 사랑을 받는만큼 사회적 책임을 느끼며, 나를 존경하는 내 아이가 나의 작은 실천으로 큰 것을 배우기를 원한다는 점입니다. 내 아이가 준비될 생명수업을 통해 더 큰 것을 배우기를 소망합니다. 이것이 바로 농부의 아들로 자라면서 내가 믿게 된 진리입니다.”


박준서 / 월드비전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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