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우리는 약 전해주는 당나귀”

2010-02-23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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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대째 한국사랑’ 유진벨 재단 북한서 의료 사역
70차례 방문해 4백억원 어치 약품·장비 등 지원
“우리 이름 아니라 후원자 이름으로 돕습니다”

“우리는 후원자들의 이름으로 일합니다. 북한 환자들에게 건네지는 약상자에는 개인, 교회 등 그것을 제공한 이들의 이름이 또렷하게 적혀 있습니다. 하지만 북한 동포들을 도울 때는 그들의 자존심을 건드려서는 안 됩니다. 그곳에도 그들을 걱정하며 수고하는 환자들의 가족과 의사들이 분명히 존재하니까요.”


외증조부 유진 벨 선교사로부터 시작된 ‘4대에 걸친 한국사랑’으로 널리 알려진 유진벨재단의 스티븐 린튼(58) 이사장은 19일 본보 인터뷰에서 “우리는 그들 사회의 틀을 깨뜨리지 않는 가운데 사역 후원자들과 북한의 의사들을 앞세워 활동한다”고 설명했했다.

전남 순천에서 유년기를 보냈으며 외증조부의 한국 선교 100주년을 기념해 1995년 이 재단을 설립한 그는 “유진벨은 별로 하는 것이 없다. 북한 주민들에게 약품을 가져다주는 심부름을 하는 당나귀 같은 존재다”라고 강조했다.

1979년 컬럼비아 대학 재학 시절 평양을 방문했다가 주민들의 참상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는 린튼 이사장은 유진벨재단을 통해 인도주의적 식량 지원으로 북한 돕기를 시작했으며, 현재는 북한 면적의 3분의 1에 해당되는 서부지역에서 결핵 퇴치 및 일반 의료지원 사역을 벌이고 있다. 지금까지 70여차례 북한을 방문, 총 400억 어치의 의약품과 의료장비를 의료기관에 전달했다. 지난 10년 동안 보낸 일반 결핵환자 약은 25만명분에 해당한다.

그에 따르면 북한 당국은 지속적인 섬김에 마음이 열려 최근 미온적 자세를 버리고 적극적으로 나와 유진벨에 보람을 더하고 있다. 다제내성 결핵 환자(1차 결핵 치료제 이소니아지드 등에 내성이 생겨 재발한 환자)들의 대량 객담(가래) 검사를 허용하고 자체 전문센터 건립 의사를 밝힌 일이 그것이다.

내성 결핵환자 1명을 치료하는 데는 보통 2년간 객담을 수차례 받으면서 각 개인에게 맞는 처방약을 제조해 주어야 하기 때문에 약 2,400달러가 든다.

작년 연말에도 2주간 결핵약을 전하러 평양에 다녀온 그는 “북한 당국이 환자 개개인을 만날 수 있도록 하고 개인 사진 촬영도 허락하는 등 투명성을 보장하고 유진벨에 기회를 많이 주고 있다”고 기뻐했다. 또 “남가주 한인 기독교계에는 요양소 1~2곳을 단독으로, 또 힘을 합해 후원하는 교회와 개인들이 약 300명에 달한다. 이번에 남가주를 찾은 것도 그들을 만나 그동안의 사역을 설명하고 감사를 표하기 위한 것이다”라고 덧붙였다.

“유진벨 재단을 통해 북한의 형제자매들을 지원한다면 앞으로 북미관계가 좋아져 한인 교회들이 다른 루트를 통해서도 방북할 수 있게 될 때 북한 사람들이 이미 그 교회의 이름을 알고 있으므로 사역을 펼치기가 수월할 것입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물건을 갖다 주는 것보다 나누는 사람의 마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린튼 이사장은 “다른 NGO들이 하지 않고 있는 이 일을 한인 사회가 막후에서 감당하면 좋겠다.‘원수를 사랑하라’는 성경말씀 대로 정치 논리를 떠나 한 인간을 살리려는 의도로 순수하게 도와야 한다”는 말로 한인들을 부끄럽게 했다.

문의 (626)824-8211, info@eugenebell.org

<김장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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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븐 린튼 유진벨재단 이사장은 “우리는 우리의 브랜드가 아니라 돕는 이들의 이름을 북한 결핵환자들에게 정확하게 알려 준다”며 많은 교회 및 교인들의 동참을 부탁했다. 왼쪽부터 유진벨 재단의 임호 부회장, 린튼 이사장, 부인 이현아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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