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신, 일상, 깨달음 - 만남

2010-02-22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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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만남이다.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서 한 사람의 삶이 바뀌기도 하고, 새로운 전환점을 맞는 복된 인생을 시작하게 한다.

우리는 세상에 태어나 죽는 순간까지 수많은 사람을 만나고 헤어지면서 크고 작은 영향을 주고받으며 성장하고 성숙한다.

만남의 영역은 참으로 놀랍다. 비단 사람과의 만남뿐 아니라 몇 페이지 안 되는 얇고 작은 소책자나 단 한 줄의 문장, 음악이나 소리, 예기치 않은 사건 등을 통해서도 생각이 바뀌고 말이 바뀌는 엄청난 결과를 초래하기도 한다. 요즘엔 사이버 공간의 만남까지 더해졌다.


누구나 좋은 만남을 원하고 있지만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주어지는 만남, 단 사흘간의 비극으로 막을 내린 로미오와 줄리엣의 만남처럼 운명적 만남도 있다.

그러나 내 생각은 다르다. 이 세상의 모든 만남에는 절대적인 하나님의 개입하심이 있다고 믿기에 ‘우연’이 아닌 ‘필연적 축복’이라고 말하고 싶다. 비록 나쁜 만남이라 할지라도 그 만남을 통해 많은 것을 배우고 깨닫게 되어 더욱 깊어지는 것이 인생이기 때문이다. 여학교 시절부터 좋아했던 정채봉님은 ‘만남’이란 시에서 네 가지 만남을 이야기하고 있다.

첫째는 ‘생선’과 같은 만남이다. 만나면 만날수록, 만지면 만질수록 비린내가 나는 생선처럼 역한 냄새와 악취로 마주잡는 손과 스치는 옷깃에 악취가 배어버리는 그런 만남. 차라리 안 만났으면 좋았을 만남. 그러나 그 가운데서도 나를 향한 주님의 음성을 듣는다. ‘네가 악취를 멈추게 하는 소금이면 안 되겠니?’

둘째는 ‘꽃’과 같은 만남. 처음 만났을 때에는 아름다운 꽃을 보는 기쁨도 있고, 정신을 못 차릴 만큼 강한 향내도 있어서 벌이 되어 꽃술 속의 꿀을 먹기도 하면서 행복해 하지만, 길어야 열흘이면 시들어버리고 마는 짧고 변질된 만남. 시들고 말라서 꽃잎이 떨어지면 주위를 지저분하게 만들고 마는 오래가지 못하는 냄비 같은 요란한 만남이다. 만족할 줄 모르는 욕심 보따리를 비우지 않는다면 타인을 향한 손가락질의 몇 십 배가 자신에게 돌아오게 된다. 결국은 꽃을 만난 나 자신의 태도가 더 중요한 것 같다. 때로는 시든 꽃도 추억담은 드라이 플라워로 더 깊은 아름다움을 주곤 하니까.

셋째는 ‘지우개’같은 만남이다. 아무런 흔적도 영향도 느낌도 남기지 않는 만남, 이기적이고 성의 없는 만남이다.

마지막은 우리 모두의 희망인 ‘손수건’ 같은 만남. 처음 보았을 땐 그리 큰 감동도 없고 기대할 것도 없는 것 같지만, 만날수록 상대방에게 요긴하고 도움이 되는 만남이다. 슬픈 이의 눈물을 닦아주는 사람, 열심히 일하는 동료나 배우자의 땀방울을 말없이 닦아주는 사람, 예기치 않은 사고로 부상을 입었을 때 상처를 싸매주는 사람, 가장 어려울 때 나타나서 힘을 보태는 사람, 그런 사람과의 만남이다.

전도서 기자는 인생을 ‘풀의 꽃’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와 같다고 했다. 이 속히 지나가는 인생을 어떤 자세로 살아야 할지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다.

남이 나에게 손수건이 되어 주기를 기대하기 전에, 내가 먼저 남의 손수건이 되기를 소망하며 오늘도 겸손히 하나님 앞에 무릎 꿇는다.

정한나 (세계선교교회 사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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