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신, 일상, 깨달음 - 빈손들이 나누는 감동

2010-02-16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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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이 지났습니다. 미국에서 살다보면 한참 잊어버리게 되는 명절입니다.

그러나 저는 설이라는 말만 들어도 까마득한 추억 저편, 어린 시절의 설날 아침이 생각납니다. 시골의 가난한 과부로서 삯바느질을 해서 생계를 꾸리셨던 저의 어머님은 일곱 살짜리 외아들에게 설빔으로 한복 한 벌을 지어주셨습니다. 무명천에 물감을 들여서 만든 흰 저고리에 흙색 바지, 청자주색 조끼에 하얀 동정이 달린 검은 두루마기였습니다. 그 당시에도 살 만한 집안 아이들은 좋은 양복이나 비단 한복을 입고 부모님 손을 잡고 세배를 다니기도 하였습니다. 하지만 저는 어머님이 틈틈이 만드셔서 설날 아침에 내놓으시던 그 무명 한복에 얼마나 행복하였던지! 그 때의 그 기쁨과 감동을 평생 잊을 수가 없었습니다. 여러 명의 손자손녀들을 둔 지금까지도 저는 설이라는 말만 들어도 제일 먼저 어머니의 무명 한복이 떠오르곤 합니다.

요즘 아이들은 그런 감동이 없이 자라는 게 아쉽습니다. 그들에게는 장난감과 옷과 물건이 집안에 너무 많이 쌓여 있습니다. 그래서 아무리 좋은 것을 주어도 그다지 행복해 하지 않습니다. 참 불행한 일입니다. 부모들도 그런 아이들에게 줄 명절 선물을 고르는 일이 한참 고민이고, 또 그렇게 골라 주어도 오래 남는 기쁨과 감동이 없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불행은 아이들에게만 있는 현실이 아닙니다. 어른들도 가진 게 너무 많습니다. 그래서 이쪽에서는 정성스럽게 애정을 담아, 나름대로 가치 있는 것이라 생각해서 선물을 하였지만, 막상 받는 쪽에서는 단지 체면치레로 고마운 체 할 뿐, 그다지 반가워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렇게 되면 성의를 주는 쪽이 받는 쪽의 감동을 억지로 요구할 수도 없는 일이므로, 정성을 쓰고도 씁쓸한 뒷맛을 금할 수가 없게 됩니다. 그래서 요즘은 누구에게 선물을 하는 일이 여간 신경이 쓰이지 않습니다. 지인 한 분은 사업상 선물해야 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 선물을 고르는 일이 너무 어렵다고 고민을 털어놓은 적이 있습니다. 그러고 보면 물질이 풍부해질수록 사람과 사람 사이에 깃드는 행복이 오히려 줄어드는 게 아닐까 생각해 보게 됩니다.


어떤 분은 우리의 손이 비어 있어야 진정한 손이 된다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무엇인가 잔뜩 쥐고 있는 사람의 손은 이미 손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움켜쥔 손은 타인과 악수할 수도 없고, 상심하는 이웃의 어깨를 도닥여 줄 수도 없고, 사랑하는 사람을 포근하게 안아줄 수도 없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물질이 가져오는 비극이 있습니다. 그래서 가진 게 없어 손이 비어 있는 사람, 손을 비울 줄 아는 사람끼리 진정한 이웃이 될 수 있다는 역설이 성립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이 남을 도울 때는 바른 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해야 한다”고 가르치셨습니다. 비어 있는 손의 더 높은 차원의 역할을 일러주신 말씀입니다. 형제를 위하여 손을 펼 때 내 의식 속에서 누구에게 무엇을 준다는 생각을 지우라는 것입니다. 도움을 주었다는 생각마저 지워버리는 은밀한 도움의 손길, 그런 사람의 손이 빈손이라 하겠습니다.

지난해 늦가을에 북한의 고아들에게 겨우살이를 위한 내복과 신발과 점프를 사서 보내자는 호소를 드렸더니 그동안 매달 도와주시던 분들이 이 호소에 서너 갑절이나 더 많은 지원금을 보내주셨습니다. 그러나 더 우리를 울먹이게 한 일은 그 돈을 보내주시는 분들이 그다지 넉넉한 생활을 하시는 분들이 아니고 저마다 고단한 삶을 사시는 분들이었다는 점입니다. 여기에 주는 분들과 받는 분들 사이에 따뜻하게 피어나는 사랑과 감격이 있었습니다.

손을 비울 줄 아는 사람들이 있어 지난 겨울은 여전히 따뜻했습니다.

송순태 / (카라미션 운영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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