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현장에서 - 모두 안고 가리라

2010-01-28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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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은 있고 크레딧도 좋고 또 부동산 가격이 바닥을 친다니 사긴 사야한다. 바쁜 와중에도 에이전트가 부르는대로 열심히 집을 보러 다닌다. 오퍼도 열심히 쓴다. 벌써 열 번째가 넘어간다. 번번이 오퍼가 미끌어진다. 이건 뭐 로또 당첨도 아니고 집 사기가 왜 이리 힘들까? 바이어는 이제 지치고 짜증이 난다.

셀러는 행복할까? 부동산이 떨어졌다해서 1년 전보다 훨씬 낮은 가격에 집을 내놓았다. 보러는 오는데 들어오는 오퍼는 없고 에이전트는 적군인지 아군인지 오퍼도 없는데 리스팅 가격을 내리라고 조른다. 누가 오퍼를 쓰지도 않는데 도대체 왜 셀러인 내가 먼저 집 가격을 깍아 내려야 한다는 것인지 어처구니가 없다. 서로 전화하기 조차 불편해지고 이참에 확 에이전트를 바꿔봐? 열 받는다.

은행은 정부의 지원을 받으며 승승장구할까?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정부의 지원으로도 돈은 모자란다. 연체는 늘고 숏 세일, 차압 주택이 수천 채가 넘어간다. 은행 본연의 일에 더해져서 은행 직원들이 기존의 셀러, 바이어 그리고 에이전트의 일들을 해야 한다. 리스팅을 주고 바이어에게 파는 과정을 일일이 살피고 결정해야한다. 바로 은행의 돈이니까.


덧붙여 진짜 돈이 없어서 페이먼트를 하지 못하고 숏 세일을 하는 것인지 판단해야 한다. 융자를 줄 때만큼 아니, 그보다 더 많은 증빙 서류들을 검토한 후 결정해야 한다. 모두 은행 자산들이다. 고객과 에이전트들의 전화가 빗발치고 항의하고 소리 지르고 웹사이트에 욕을 한 바가지씩 올린다.

에이전트는 어떨까? 말해서 무엇하냐이다. 이런 손님들 사이에 끼어서 이런 부동산 시장에서 웃고 서있거나, 앉아 있을 에이전트는 없다. 지친 바이어가 은행 매물에 가격을 확 올려주든지. 그래서 겨우 하나 판다. 실직, 이혼 또는 죽음 등의 악재, 유산 상속 그리고 간혹 정말 현실적으로 시장 상황을 이해하는 셀러나 바이어들 그래서 싸게 나오는 매물을 얻는 행운이 아주 가끔 있다. 흔한 일이 아니다. 확률상 보통 때의 스무 배 노력을 기울이면 보통 때 십분의 일의 실적이 나온다. 쪼들려서 다른 직업을 찾아야 되나 심각하다.

비가 갑자기 며칠 째 또 밤새 쏟아지던 지난 주였다. 아침에 일어나 뒷문을 여니 마당 가득히 빗물이 찰랑 찰랑, 15센티미터도 넘게 쌓이며 금방이라도 집안으로 들어오려는 찰나였다. 아이뿐만 아니라 한국에서 오신 손님들까지 깨워서 바가지, 양푼들로 물을 퍼 올렸다. 쏟아지는 빗속에서 눈물이 다 난다. 날벼락이라더니 물벼락이 이것이구나. 여기는 캘리포니아인데 말이다.

급기야 진흙이 흘러내리는 산사태가 우려된다며 경찰이 이 폭우 속에 집을 비우고 나가란다. 우리 집은 길 끝쪽이어서 정말 괜찮은데 거리 입구에서 경찰이 차로 길을 막고 지키기를 연 사흘이다. 아이 학교도 보내지 못하고 가능한 집안의 불을 모두 끄고 없는 듯이 숨죽이고 한 주일을 보냈다.

12학년인 아이가 분통을 터뜨린다. 공부하느라 힘들고 산사태 그리고 한국에서 오신 손님까지 나 너무 힘들어서 미칠 것 같다는 말이다. 대학 때문에 공부하느라 힘든 것은 알겠는데 나머지 이유들은 물론 영향은 있으나 저와 무슨 상관인지 코웃음이 나온다.

불경기에 여러가지 힘들지만 이를 핑계로 우리는 이것이고 저것이고 항상 모든 게 더 골치 아프다며 이유를 찾고 있는 건 아닐까. 마치 어린아이가 아무 이유 없이 투정 부리듯이….

이 나이의 어른이라면 나쁜 이유들을 줄줄이 나열하기 보다는 지금 가진 것에 감사하며 좋은 것, 나쁜 것, 기쁨과 슬픔을 겹겹이 두른 채 열심히 살아야 하지 않을까? 모두 모두 안고 가리라.
(818)317-8525 sunnyms@pacbell.net

서니 김 / 리맥스 부동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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