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나눔의 행복 - 하나님의 눈에 비친 아이들

2009-11-11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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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아이들의 엉뚱한 발상과 기발한 상상력으로 인해 배꼽을 잡거나 당황했던 기억을 누구나 한번쯤은 갖고 있을 겁니다.

“오늘은 유치원을 마치고는 엄마하고 식료품점(Grocery)에 갔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다른 반 선생님을 만났습니다. 선생님도 나에게 알은체를 하셨습니다. 무척 반가웠지만, 이상한 것은 선생님이 왜 유치원에 안 있고, 여기 식료품점에 있는 걸까요?”

요즘 내가 가끔 방문하는 꼬마 아가씨 알렉스의 ‘유치원 일기 블로그’에 올라있는 글 중 한 토막입니다. 제목은 ‘선생님도 식료품점에 가네’였습니다. 선생님은 유치원에만 있는 사람인 줄만 알았던 아이의 천진난만한 발상이 너무 귀여워 읽는 동안 절로 입가에 미소가 만들어졌습니다.


알렉스는 미국인 동료 에릭의 큰 딸입니다. 에릭은 10년 이상 월드비전에 근무한 베테랑으로, 성실함을 바탕으로 업무 능력을 꽤 인정받는 직원 중 한 명입니다. 또 한국 월드비전에서 근무하다 미국 월드비전의 요청으로 이곳 시애틀로 이주해 온 2003년 겨울 일가붙이 하나 없고 미국생활에 적응하지 못한 상황에서 맞이한 성탄절이 약간은 외롭게 느껴지던 우리 가족을 자기 집으로 초대해 저녁식사를 나누고, 뒷마당 창고에서 함께 크리스마스 리스(wreath)를 만드는 이벤트를 준비해 우리에게 즐거움을 선사했던, 배려심 많은 좋은 동료입니다.

지난 해 가을 에릭은 세째 아이 올리버를 얻었습니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그가 선천성 심장질환을 갖고 태어난 것입니다. 인큐베이터 신세는 물론이고, 지난 일년간 3번의 큰 수술을 통해 인공기관들을 신체에 장착하고, 설상가상 호흡기 손상 바이러스에 감염돼 사경을 헤맨 적도 있어 그 아이의 쾌유를 비는 기도를 직원 모두가 함께 드리기도 했습니다. 아이도 아이지만 에릭도 보기에 딱할 정도로 힘든 시절을 보내고 있습니다. 심적인 어려움에 더해 병원비를 감당해야 하는 재정적 어려움도 큰 고민입니다.

한 달여 전, 우연히 에릭과 사무실 복도에서 마주친 차에 올리버를 비롯한 가족의 근황을 물어봤습니다. 가슴 한 켠에 미안함과 안타까움을 담아서 어렵게 물어 본 질문에 에릭은 너무나 환한 얼굴로 “Everything’s been going well”이라고 답하는 것이었습니다. 의아한 얼굴로 자신의 얼굴을 쳐다보는 나에게 그의 말이 이어졌습니다.

“힘들지 않다면 거짓말이겠지요. 원망과 낙심의 날이 이어졌고, 어려운 이들과 함께하는 하나님 사역에 대한 신념이 허물어지는 시기도 있었지요. 그런데 문득 깨달은 것이 있어요. 어느날 올리버 옆에서 자고 있는 알렉스를 물끄러미 쳐다보는데, 내가 느끼는 사랑이 알렉스나 올리버나 전혀 차이가 없더라구요. 사실은 올리버에게 훨씬 더 맘이 가는 것이었어요. 그러면서 든 것이 하나님의 마음도 나처럼 멀쩡하고 여유 있는 아이들보다는 고통 받는 아이들에게 훨씬 더 애정을 가지시겠구나 하는 생각이었습니다. 우리 월드비전 슬로건 중에 이런 말이 있잖아요. ‘Every child is precious in His eyes’(하나님의 눈에는 모든 아이가 한결 같이 귀한 존재이다). 정말 맞는 말 같아요. 지금은 너무나 평안하고, 모든 것을 잘 극복하고 건강해지고 있는 올리버에게 감사하고, 그 아이를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리고 있습니다”

요즘 나의 가장 큰 즐거움은 시간 날 때마다 에릭네 가족 인터넷 블로그를 뒤지며 올리버의 현황을 읽으며 안심하고, 알렉스의 유치원 일기를 훔쳐보며 그 아이의 엉뚱한 발상에 미소 짓는 일입니다. 에릭 화이팅. 올리버 화이팅!


박준서 (월드비전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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