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생활인의 신앙 - 영적 싸움

2009-11-09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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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는 지난달 핼로윈 놀이 때 본 것 같은 무시무시한 얼굴의 뿔이 달린 사나운 모습으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를 유혹하는 악령의 소리다. 많이 움켜쥐라는 탐욕의 소리, 즐겁게 쾌락을 취하라는 정욕의 소리, 대접받고 박수 받으며 떵떵거리며 사는 것이 최고의 가치라는 공명심의 소리다. 다시 말해 우리를 유혹하는 보이지 않는 악령의 속삭임으로 나타난다.

본래 마귀와 사탄은 하느님을 배반한 천사들이다. 타락한 영적 존재로 교활한 면에서는 인간보다 몇 수 위다. 그 때문에 제 아무리 똑똑한 인간이라도 하느님의 도우심이 없이는 그들을 당해낼 재간이 없다. 두 분 부릅뜨고 정신 바짝 차리고 산다 해도, 제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친구처럼 때론 애인처럼 달콤한 말로 속삭이니 어떻게 우리가 마귀와 사탄을 분별할 수 있겠는가.


손자병법에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전백승’이라 했다. 그런데 마귀란 놈은 결코 정체를 드러내지 않으니, 언제 어떤 식으로 공격해올 지 알아챌 수 없는 속수무책의 ‘영적 싸움’이 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인지 마귀와 사탄의 존재마저 아예 의심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실제로 악마를 봤다, 안 봤다 하는 논쟁이 벌어지기도 한다. 허나 그에 대한 대답은 너무나 분명하다. 제 아무리 교활한 악마라 해도 하느님 앞에서는 숨을 데가 없다. 그 때문에 예수님은 수차례 악마와 마귀를 내쫓으시면서 그 존재를 확인해 주신 것이다.

이런 악마와 마귀는 인간보다 한 수 위여서 자기 모습을 드러내면 인간들이 기겁하고 놀라 도망칠 것을 알기에 인간의 눈으로 볼 수 있게끔 처신하지 않는 간교함을 지니고 있다.

악마는 인간의 욕구를 잘 이용해서 유혹한다. 심지어 그들은 인성을 지닌 예수님마저 유혹했다. 광야에서 예수님께서 굶주렸을 때 돌로 빵을 만들라고 유혹했다. 그분이 이를 거부하자 세상의 온갖 영화를 보여주며 자기에게 절하면 이것을 주마고 강력히 유혹했다. 그래도 단호히 거부하자 마지막엔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내려 종교적인 권위와 명예를 즐기라고 공명심을 부추겼다. 예수님은 “사탄아 물러가라”고 과감하게 “No!!!”하셨다. 그러자 마귀는 더 이상 힘을 쓰지 못하고 물러갔다.

여기서 우리는 마귀들이 쓰는 수법을 즉시 알아차려야 한다. 사탄의 유혹은 참으로 집요하고 끈질겨서 즉시 물리치지 않으면 거부하기 어려워진다.

즉시 ‘No’하지 않고 어물쩍거리거나 미련을 보이면 “딱 이번 한 번만…남들도 다 그러는데…그렇게 하기를 잘했다”고 합리화하고 정당화까지 시키게끔 유혹하는 것이 늘상 마귀들의 단골 수법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유명한 유대교 랍비 조시(Josh)는 “사람이 짓는 죄의 절반 이상은 ‘No!’를 너무 늦게 하기 때문에 온 것이다”고 설파했다. 여기에 마귀와 사탄의 유혹을 이길 놀라운 비결이 담겨 있는 것 아닐까.


김재동 <가톨릭 종신부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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