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오지랖 접기

2009-10-22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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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길고 긴 여정을 거치고도 에스크로가 깨졌다.

요즘 마켓에 흔히 있는 일이다.

그래도 중간에 잘 엮으려던 에이전트 입장에선 원치 않는 스트레스를 받는다.


에스크로 하나 오픈하기가 어렵기도 하지만 에스크로 도중에 일어나는 숱한 파노라마가 그나마 잘 끝나면 아름다운 해피 엔딩이 되지만 그렇지 못하면 훌훌 털어버리는 데도 꽤나 오랜 시간을 필요로 한다.

내 것이 아니기에 맘 내키는 대로 하지 못하고 고객이 이유 없이 깨더라도 이미지 손상될까 입바른 소리 하나 제대로 못한다.

일 잘하고도 그 고객이 원하는 것 들어주지 않으면 원망소리 끝에 무능한 에이전트로 전락한다. 발 없는 말이 천리가 듯 안 좋은 편견은 더 멀리 퍼진다.

접해보지 못한 사람에게서 소문이 들리고 안면이 바뀐다.

돈 몇 푼에 양심이 없어지고 양쪽 모두 변호사 선택이라는 합리적인 대화 창구를 찾는다.

어제까지 고마웠던 에이전트가 원하는 대로 해주지 않는다는 이유로 불성실한 사람으로 매도시킨다.

바이어로 인해, 셀러로 인해 에이전트 시간이 없어지는 건 누구도 계산 안 한다.
에이전트는 딜이 끝난 후에야 그 보상을 받는 직업이라 누구의 잘못으로 에스크로를 깼건 그 후유증은 우리 몫이다.


특별히 아주 대담한 성격이 아닌 다음에야 바이어든 셀러든 본인 사정으로 딜을 깬 후 에이전트에게 미안하단 소리 하나 없으면 한동안 손에 일이 잡히지 않는다.

딜마다 사연 하나씩은 다 있지만 잘 도와주고도 어이없는 반응이 돌아오면 잠시 쉬고도 싶다.

그 많은 에이전트들이 단지 커미션만 보고 일을 한다는 생각을 하는지 끝까지 인내하는 에이전트의 수고를 알려고 하지 않는다.

광고나 지인을 통해 만나든 일단 집이나 비즈니스를 통해 서로를 만나지만 사람과 사람과의 만남이라 그 짧은 기간에도 좋은 사람과의 딜은 쉽고 제대로 순탄하게 끝난다.

딜을 하는 도중에도 신바람 나서 딜을 잘 엮어준다는 보람에 나름 뿌듯하다.

그러나 시작부터 잡음이 생기면 여러 번 에스크로를 연장시켜줘도 성사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바이어는 집을 사거나 비지니스를 벌리기 전에 미리 자신의 청사진을 꾸며야 한다.

집인 경우 융자가 까다로우므로 다운 페이먼트와 월수입이 충분한지, 비즈니스인 경우엔 매매가격외에 리스와 리모델 할 비용까지 미리 계산한 뒤 오퍼를 써야 한다.

캘리포니아는 따로 에스크로 용지를 작성하기보다 오퍼 자체의 조건 그대로 에스크로를 열기에 오퍼를 쓰기 전 에이전트와 충분한 상의가 있어야 한다.

동원 자금이 에스크로가 끝날 때 까지 충분치 않다거나 은행 융자가 필요하면 미리 융자승인을 받아둔 뒤 오퍼를 작성해야 무리가 없다.

막연히 자금준비가 되리라 여겼다가 차질이 오면 Deposit은 그대로 날릴 각오를 해야 한다.

계약 취소는 어느 한 쪽의 의사만으로는 힘들다.

계약을 깰만한 조건을 셀러와 바이어가 모두 합의한 후에야 cancel이 가능하다.
좋은 매물이라고 달려들었다가 바이어 사정으로 깨면서도 셀러 탓으로 돌리는 케이스를 보면 사람이 달라 보인다.

내 주머니가 소중하면 남의 주머니도 소중한데 불 떨어지면 내 발등만 뜨겁다.
그래서 셀러나 바이어나 자기 입장만 내세운다.

중간에 에이전트만 곤란해진다.

에이전트는 계약서대로만 일하면 되는데 꼭 남다른 오지랖에 스트레스만 늘어난다.

오지랖을 줄이면 덜 고달픈데 그것도 뜻대로 되지 않는다.

오후에 우연히 고객에게서 날라 온 Thank You 카드 하나에 그간의 시름을 희석시키곤 바로 전화기를 집어 든다.

“소개 시켜드린 이삿짐 운송회사 어떠셨어요?”

여러 에이전트들의 넓은 오지랖이 고객의 눈에 따스한 정성으로 보인다면 분명 덜 힘들 것이다.


카니 정 / 콜드웰뱅커 베스트 부동산
(562)304-39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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