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생활인의 신앙 - 사랑한다면 헌신하라

2009-10-12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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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미 칠레의 산속 늪지에 사는 ‘리노데르마르’라는 개구리에 대한 이야기를 읽고 큰 감동을 받았다. 책에 소개된 이야기에 따르면 암컷 개구리가 산란기가 되어 알을 낳으면, 그 순간 옆에 있는 수컷이 알을 전부 삼킨다고 한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알을 삼킨 수컷 개구리가 알들을 완전히 삼켜버리지 않고 식도 부근에 있는 소리 주머니에 그 알들을 소중히 보관한다는 사실이다. 그런 후 수컷은 그 알들이 성장할 때까지 자기 자신을 온전히 희생한다.

수컷 개구리는 젤리 같은 끈적끈적한 물질에 싸인 알들이 완전히 성장할 때까지는 결코 입을 열지 않는다고 한다. 소리 주머니 안의 알들이 자라는 동안 아버지 개구리는 먹는 것도 포기하고, 자신의 유일한 즐거움인 ‘개굴개굴’ 노래하는 것조차 포기한다. 자신의 소리 주머니 안에서 편히 잠자는 작은 새끼알들이 혹시 놀랄까 봐 굶주림도 참고 있는 리노데르마르 개구리의 부성애는 ‘사랑과 헌신’이 무엇인가를 웅변적으로 말해 준다.

때가 되어 알이 부화되기 시작하면 비로소 수컷 개구리는 긴 하품을 하듯 자신의 입을 크게 벌리고는 새끼 올챙이들이 밖으로 튀어나오도록 딸꾹질을 하며 내보낸다. 그런 후 먹지 못해 몸이 줄어들 대로 줄어든 수컷 개구리는 그제야 먹이를 찾아 나선다고 하니, 미물이지만 만물의 영장인 인간이 본받을 점이 참 많다는 생각이 든다.


과연 인간의 어떤 아버지가 새로 태어날 자기 자녀를 위해 이토록 헌신할 수 있을까. 그대로 나두면 물고기나 뱀, 다른 곤충들의 밥이 될 수도 있는 위험에서 새끼 알들을 보호하기 위해 자신을 희생하듯이, 이 세상의 악한 세력에서 자녀를 보호하려고 자신을 희생하고 헌신하는 그런 인간 아버지들의 모습이 그래서 보고 싶어진다.

내가 아는 분 중에 그런 아버지 한 분이 있다. 미국에 이민 와 장사 하느라고 밤낮으로 정신없이 살다보니 사춘기에 접어든 아들이 그만 친구들과 잘못 어울려 마약에 중독된 모양이다. 뒤늦게 그 사실을 알게 된 그 분은 잘 나가던 사업을 처분하고 즉시 아들을 데리고 브라질 오지에 들어가 단 둘이서 반년 이상을 살다 왔다. 그런 아버지의 눈물겨운 헌신으로 아들은 마약을 끊고 새 사람이 되었다. 그리고 아들뿐 아니라 아들과 함께 밀림에서 새로운 삶의 의미를 발견한 그는 신학교에 들어가 목회자가 되었다. 나는 이 분에게서 자식을 사랑하기 위해 자신을 희생할 수 있는 거룩한 아버지의 헌신이 무엇인지를 보았다.

참된 사랑은 그래서 희생과 헌신을 요구한다. 하느님마저도 그 길을 택하셨기에 말이다. 전능하신 하느님은 희생 없이도 인간을 구원하실 수 있는 분이다. 말씀 한 마디로 인간의 죄를 용서해 주실 수 있다는 말이다. 그런데도 하느님은 외아들을 십자가상에서 제물로 삼아 속죄의 어린양이 되게 하신 희생과 헌신의 길을 택하셨다. 이것이 바로 인간을 사랑하신 하나님의 사랑의 길이요, 방식이다.

하느님은 사랑이시다. 때문에 사랑의 원천이신 그분의 방식을 따르지 않고는 결코 진실된 사랑을 할 수 없다. 요즈음 많은 사람들이 헌신 없는 로맨틱 러브만을 사랑으로 착각하며 살고 있다. 그 결과 좋을 때는 미친 듯이 사랑하다가도, 막상 ‘헌신’이 필요할 때는 귀찮아하며 쉽게 돌아서 버린다. 헌신 없는 사랑은 그래서 이혼으로 끝날 수밖에 없다. 참된 사랑은 오직 ‘헌신’을 통해서만 영원히 지속될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김재동 <가톨릭 종신부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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