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복음 이야기 - 멜로드라마광 VS 일중독

2009-10-07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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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조의 여왕’부터 ‘아내의 유혹’ ‘밥 줘’에 이르기까지 최근 한국에서는 불륜 소재의 막장 드라마가 인기다. 언제부터인가 불륜이 TV 드라마 흥행 공식으로 등장했다. ‘불륜 공화국’이란 오명도 생겼다. 로맨틱한 사랑이 정상적인 사랑의 신뢰 관계보다 더 강조되고, 불륜이 진짜 사랑을 찾아나서는 용기 있는 행동으로 미화된다. 전통적인 사랑과 순결의식은 고리타분하고 비겁한 현실주의다.

때로 엽기적인 설정도 서슴지 않는 이런 멜로드라마의 시청률은 여성들이 좌우한다. 왜 여자들이 멜로드라마에 그토록 심취할까. 그들이 왜 남자보다 더 관계 지향적인 데다 의존 성향이 강할까. 성경 창세기에 나오는 첫 사람 아담의 타락현장에 해답이 있다.

원래 남자와 여자는 평등하게 지어졌다. 대등한 관계에서 각자 역할에 맞게 서로 돕고 사랑하며 살게 하셨다. 그러나 선악과 사건 이후 하나님께서 여자에게 내린 심판은 “너는 남편을 사모하고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니라”(창 3:16)는 선고였다. 그때부터 여자는 자신들의 정체성을 남자와의 관계성에서 찾기 시작했다. 남자들의 사랑과 관심이 한 인격으로서 자기 존재의 가치를 결정한다고 믿었다.


타락 후 남자들에게도 왜곡된 삶이 시작되었다. 하나님께서 남자에게는 “네가 얼굴에 땀이 흘러야 식물을 먹고”(창 3:19)라고 말씀하셨다. 타락 전에는 인간이 에덴동산을 관리하되 그 일은 생계용이 아니었다. 본래 창조질서에서 일은 이웃 섬김의 즐거움과 성취의 보람을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타락 후부터 땅은 애써 갈아야만 수확할 수 있는 ‘생업현장’으로 돌변했다. “땅은 너로 인하여 저주를 받고 너는 종신토록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창 3:17). 이때부터 남자는 성취감 이전에 생계유지를 위한 의무감에 떠밀려 일터로 나서야 했다.

결국 일의 본뜻도 변질되었다. 참된 이웃사랑보다는 세상의 인정을 통해 자기 정체성을 확보하고 자기 영향력을 무한확대하려는 방편으로 전락했다. 그 ‘일중독’의 배후에는 태초에 하나님께로부터 정죄되어 인정받지 못한 무의식의 상처가 도사리고 있다. 동성인 아버지의 인정을 받지 못한 나머지 동성애에 빠져들고, 여자를 자기 위안과 과시의 도구로 여기면서 불륜과 포르노에 탐닉한다.

멜로드라마 중독이나 일중독은 수많은 타락의 후유증 가운데 대표적인 일례에 불과하다. 타락의 영향으로 하나님과의 관계(종교활동), 이웃과의 관계(사회활동)뿐만 아니라 땅과의 관계(경제활동)마저 왜곡되고 말았다. 나라를 구성하는 주권과 국민, 영토라는 세 요소간의 관계가 송두리째 어그러졌다. 총체적인 하나님 나라의 상실이었다.

죄악과 고통과 부조리가 가득한 세상은 창조주께서 원래 계획하신 세상이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바로 이 죄악을 제거하고 본래의 하나님 나라를 온전히 회복하시려고 한 사람의 구원자를 보내기로 하셨다. 또한 그를 왕으로 삼을 한 민족을 하나님 나라의 모형으로 택하시고, 그 모든 회복의 약속과 성취를 담은 책을 맡기셨다.

종교의 경전들 가운데 어떤 책도 한 민족의 실제 역사 전체를 배경으로 삼은 책은 없다. 또 그 역사를 무대로 한 사람의 출생과 삶, 죽음, 부활을 주된 테마로 삼지도 않는다. 이 사실만으로도 ‘성경 기독교’는 충분히 독특하다. “그런즉 유대인의 나음이 무엇이며 할례의 유익이 무엇이뇨 범사에 많으니 첫째는 저희가 하나님의 말씀을 맡았음이니라”(롬 3:1,2).


안환균 <남가주사랑의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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