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추석 대 명절

2009-09-28 (월)
크게 작게
김철우(홈아트 갤러리)

우리 명절 중 가장 큰 명절이 추석이다, 역사로 따져본다면 미국의 추수 감사절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삼국사기에 (BC.57년) 혁거세(赫居世)는 조선의 유민들이 모여 살고 있는 진한(辰韓)의 6부(알천 돌산 취산 무산 금산 명활산)에서 거서간(居西干왕의호칭)에 즉위한다. 나라 이름은 서나벌(徐那伐)이라 하였고, 2대 남해(南解)왕의 태자 이사금((尼師今)이 3대 유리(儒理)왕에 즉위하면서 대 정치개혁을 단행하는데, 즉위 2년 그는 국내를 순행하다가 노파가 추위와 굶주림에 얼어 죽게 된 것을 보고 내가 윗자리에서 백성을 잘 다스리지 못하여 이 지경에 이르게 하였으니 나의 잘못이 크도다. 하고 왕의 옷을 벗어 입혀주고 음식을 먹인 후 유사(有司)에게 명하여 방방곳곳 홀아비, 과부, 고아, 병자들을 급양(給養)하게 하니 이웃나라 백성들이 소식을 듣고 오는 자가 많았다고 했다,

노동인구가 적었던 당시로서는 이민정책을 시행했다고 보아진다. 그리고 9년 봄 행정구역 개편이 시작된다, 6부의 명칭을 바꾸고 성씨를 내려주었다, 양부는 이(李)씨, 사량부는 최(崔)씨, 점량부는 손(孫)씨, 본피부는 정(鄭)씨 한지부는 배(裴)씨 습지부는 설(薛)씨로 하였다, 또 관을 설치하여 17등급으로 나누었다. 우리나라 추석의 유래가 그때 가배에서 시작하였다고 하는 것이 사학자들의 공통된 견해이다. 가배(嘉俳)는 음력 7월16일부터 나라 안의 여자들을 모아놓고 한편씩 편을 갈라 공주들이 거느리고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길쌈을 매게 했으며 8월15일에 이르러서 많고 적은 것을 견주어 진편에서 음식과 술을 만들어 이긴 편에게 사례하도록 하였다. 오늘날 생산량을 높이기 위한 산
업경시대회 같은 것이었으리라,


8월15일은 노래와 춤 온갖 놀이가 벌어졌으며 진 편에서 한 여자가 나와 춤추고 노래하며 ‘회소 회소(會蘇會蘇-모여라 모여라)’했는데 그것을 회소곡이라 이름 붙였다, 아마 새마을 노래 같은 것이 아니었을까, 8월 한가위 둥근달이 환히 비쳐 주는 달밤은 전기가 없던 시절 하늘이 내려준 일 년 중 가장 길일이었을 것이다, 일본 승려 엔닌(丹仁)(AD,838-847)의 일기에서는 일본 천왕이 정2품의 벼슬과 권위의 칼을 수여하는 등 4척의 배에 651명의 사절단 을 중국에 파견하였다,

당시 일본과 신라의 사이가 좋지 않아 쉬운 뱃길 신라연안을 따라 당나라로 가지 못하고 위험한 황로를 택하였다 그는 우리나라 남해와 서해를 주름잡고 있었던 완도(청해진)의 장보고에게 보내는 일본 관리의 편지도 가지고 있었다, 사절단이 중국에 도착했을 때 생존자가 391명 이었다니 얼마나 험난한 항해를 했다는 것인지 알 수 있다, 그들은 중국에 도착해서도 많은 신라인들의 도움을 받았다, 그의 일기에는, 중국에 살고 있는 신라인들은 신라방 내의 행정은 신라인 총독이 관장하고 치외법권적 지위를 부여받고 있었으며 신라인들의 대 명절 음력 8월15일은 신라인들이 모두 모여 수제비와 떡을 장만하고 흥겹게 노래 부르고 춤추기를 3일 밤낮으로 계속했다고 했다,

뉴욕의 청과상조회 추석 대잔치는 초기 이민자들이 하루 18시간씩 열심히 일한 피와 땀의 결실이다, 그것이 씨앗이 되어 뉴저지 에서도 추석 대잔치를 벌인다. 우리 교민이 모여 사는 곳은 어디서든 추석 대잔치를 했으면 좋겠다, 추석 잔치는 먹고 마시고 노는 잔치가 아니라 햅쌀로 송편을 빚고 햇과일 등 음식을 장만하여 차례를 지내고 벌초 성묘 등 우리의 조상들에게 감사를 표하는 날이다, 우리의 이민 후손들에게 우리 민족의 얼을 고취시키고 추수감사절 못지않게 찬란한 미국역사 속에 한 부분을 우리 추석명절이 차지하기를 굳게 믿어 의심치 않는다.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